카녜이 웨스트 내한에 환호할 수 없는 이유 [콘텐츠의 순간들]

‘천재적’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소 무책임하며 모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너무 남발되었다. 언론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상의 절반은 천재 아티스트일 것이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왜 천재적인가’를 풀어서 쓰는 것이야말로 평론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럼에도 이 무책임한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극소수 아티스트가 있다. 예컨대 카녜이 웨스트가 그렇다. “모든 것은 이미 만들어졌다”라고 말하는 현대 예술 환경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만든 음악을 통해 독창성이 실현 가능한 개념이란 것을 증명했다.
카녜이 웨스트는 보컬 샘플의 높이와 빠르기를 극단적으로 조절한 획기적인 샘플링 기법을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기존 힙합 프로덕션에서 벗어나 과감한 해체와 결합으로 힙합 음악의 경계에 대한 건설적인 논란을 불러왔다. 서로 다른 세계였던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결합을 활성화한 것도 웨스트다. 심지어 지나치게 독선적인 태도마저 그의 거대한 음악 세계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패션, 앨범 커버 아트워크, 뮤직비디오 등 비주얼 면에서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결과물을 선보였다. 카녜이 웨스트는 언제나 트렌드를 주도했고, 때론 트렌드 그 자체였다. 그는 ‘힙합’이라는 장르를 재정의했으며,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었고 대중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웨스트는 21세기 힙합과 팝 음악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개척자다. 그런 웨스트에게 이젠 ‘천재’만큼이나 빠르게 따라붙는 단어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논란’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스타가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렸지만, 웨스트의 경우는 수위와 파급력이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해볼까. 반유대주의, 정치 극단주의, (인종·종교·성별 관련) 혐오 발언. 그 혼자서 이 모든 논란을 몰고 왔다. 일단 반유대주의적 발언만 수차례다. 가장 큰 논란의 시발점이 된 발언은 2022년 10월에 나왔다. 웨스트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유대인에 대한 3차 데프콘을 실시하겠다’라며 마치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듯한 공격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명백히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혐오 발언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웨스트의 SNS 계정은 정지되고 대중의 강력한 비난이 뒤따랐다. 아디다스와 발렌시아가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계약이 해지됐다.
하지만 카녜이 웨스트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여러 인터뷰와 방송에서도 유대인에 대해 문제적 발언을 이어갔다. ‘드링크 챔프스(Drink Champs)’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유대인들이 음악산업과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으며 흑인 아티스트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펼쳤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통제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2022년 12월 ‘앨릭스 존스 쇼’에서는 반유대주의 논란의 정점을 찍는다. 나치 독재자 히틀러에 대해 긍정적 언급을 한 것도 모자라 “나는 나치를 사랑한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발언은 미국 내 유대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연히 여러 유명 인사와 유대인 단체가 공식 성명을 통해 웨스트를 강력히 규탄했다. 올해 2월에도 그는 X 계정에서 “나는 나치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백인을 증오하고 흑인을 이용한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몇몇은 유대인인데, 그들 중 누구도 믿지 않는다” 등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웨스트의 정치적 입장은 이 같은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후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해왔다. 트럼프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모자를 쓰고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트럼프와의 회담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알려졌다시피 트럼프는 유색인종 차별 및 혐오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웨스트가 지지한 정치적 이념은 흑인 커뮤니티를 포함한 다수 팬층의 사회적 견해와 충돌했고, 이는 그의 진정성과 의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일부는 웨스트의 정치적 발언이 지나치게 무지하고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웨스트는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에 관해서도 충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2022년 10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White Lives Matter)’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공개한 것이다. BLM은 경찰 폭력과 구조적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의 생명이 존중받아야 함을 외치는 사회운동이다. ‘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BLM에 대한 정치적·인종적 반감을 담은 슬로건인데 종종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이 사용하는 문구로 비판받았다. 해당 티셔츠 공개 이후 반발과 비판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웨스트는 “BLM은 사기극이었다. 이제 끝났다”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유명인과 활동가가 그를 비판했다. 반면 일부 보수 정치인들과 매체는 그를 “진실을 말한 용기 있는 예술가”라며 칭송했다.
표현의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가장 최근엔 KKK 복장을 착용하여 또 한번 충격을 안겼다. KKK는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등을 표방하는 폭력적 혐오 단체다. 지난 3월 팟캐스트 ‘DJ 아카데믹스’와 한 인터뷰에서 웨스트는 검은색 KKK 스타일의 가죽 복장과 나치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착용했다. 그는 2023년에도 마이애미에서 열린 앨범 〈벌처스(Vultures)〉의 리스닝 파티에서 KKK 복장을 연상시키는 패션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티셔츠나 KKK 스타일 복장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자 사회적 무책임의 표본이 될 수도 있다. 아티스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그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특히 인종과 권력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는 그 의도와 맥락, 책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카녜이 웨스트가 연이어 보인 문제적 행보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예술과 윤리는 과연 구분될 수 있는가?’ 동시에 딜레마를 만든다. ‘예술적 천재성이 윤리적 결함을 용인할 수 있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과거에도 그랬듯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은 예술을 소비할 때 그 예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세상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논해야 하는 세상이다.
5월31일 그는 한국에서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2010년 동해안 낙산해수욕장 공연과 2024년 리스닝 파티에 이어 세 번째 내한이다. 특히 2016년 월드투어 이후 오랫동안 단독 콘서트를 열지 않았던 터라 팬들에게 이번 공연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굳이 지금?’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현재 웨스트는 ‘공공의 위험 요소’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위대한 음악적 업적과 유산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그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며 손을 흔들고 기뻐하지는 못할 듯하다.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