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연합’은 성공, ‘DJ-YS’는 불발…‘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시나리오 결말은?

변문우 기자·백진우 인턴기자 2025. 5. 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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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단일화 사례는 ‘노무현-정몽준’ 모델…이회창은 단일화에 ‘두 번’ 좌절
‘문재인-안철수’ 단일화해도 당선 실패…“단일화해도 이재명 1강 뚫을지 의문”

(시사저널=변문우 기자·백진우 인턴기자)

6·3 대선까지 한 달도 남지 않으면서 '이재명 1강(强)' 체제를 흔들 핵심 변수인 '범보수 빅텐트' 단일화 향방에 정치권 관심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다만 빅텐트의 핵심 축인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 후보가 단일화 협상 시작부터 진통을 겪으면서 한치 앞의 결과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역대 대선의 경우는 단일화 성공 사례가 얼마나 있었고, 최종 대선 결과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와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5월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일화' 4번 중 3번은 '대선 승리'…DJ도 단일화에 울고 웃었다

첫 번째 단일화 성공 모델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의 ①'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사례다. 특히 해당 사례는 '이회창 1강'에 나머지 후보들이 추격하는 구도였다는 점에서 지금의 '이재명 1강' 대선 상황과 비견된다.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당내로부터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고 후보직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두 후보는 선거를 42일 앞두고 단일화 협상에 나섰고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해 당원투표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로 경선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선거 25일을 앞두고 노 후보가 극적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선거 하루 전날 정 후보가 노 후보의 지지를 철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지지 철회는 오히려 노 후보에 대한 동정론을 일으키며 그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꺾고 당선하는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그 직전 치러진 16대 대선에서의 ②'DJP(김대중-김종필) 연합'도 대표적 단일화 사례로 꼽힌다. 1997년 대선 정국 전까지 김대중(DJ)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JP)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약 1년의 시간 동안 연합을 구상했다. 결국 대선을 45일 남겨놓고 두 사람은 별도의 경선 없이 일치감치 단일화를 이뤄냈다. 김대중 총재가 단일 후보로 나서는 대신 김종필 총재가 공동정권의 국무총리와 조각권을 보장하는 조건에서다.

두 후보의 연합으로 당시 시대적 과제였던 '보수 청산'과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민주화' 서사가 결합되면서 국민들의 지지까지 결집됐다. 여기에 두 총재의 지지 기반인 호남과 충청 표심까지 합쳐지면서 결국 김대중 총재가 이회창 총재의 무릎을 꿇리고 당선됐다. 헌정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순간이었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립내각을 구성해 단일화 조건을 이행했다.

가장 최근으로 시간을 돌려보면 2022년 20대 대선에서 ③'윤석열-안철수' 후보가 대선을 불과 6일 남겨놓고 극적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당초 양측이 단일화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단일화에 성공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공동 운영하는 조건에서다. 이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불과 0.73%포인트 차로 이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사저널 양선영

'단일화' 통하지 않은 사례도…'탄핵의 강' 핸디캡도 여전

반대로 단일화 실패는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실패'로 고배를 마셨다. 당시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숙원을 이룬 통일민주당은 대선 직전 ④'YS-DJ' 단일화를 추진했다.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는 김대중 당시 후보에게 경선 요구 조건인 미창당 지구당 수를 양보했다. 그럼에도 김대중 후보는 약속을 파기하고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고 결국 대선에서 3위에 그쳤다.

또 단일화에 성공한다 해도 대선에서 필승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의 ⑤'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첫 사례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정권 교체'를 기치로 단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두 후보의 단일화 과정은 첩첩산중이었다. 단일화 룰을 두고 극심한 갈등을 빚으면서다. 결국 안 후보가 돌연 사퇴하면서 급작스러운 단일화가 이뤄졌지만 결국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8년 전 '탄핵 정국'과 똑같은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고 있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2017년 5월 갑작스레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범야권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힘을 결집시켰다. 반면 보수 진영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난립하면서 단일화에 결국 실패했고 보수 진영 분열을 초래했다. 결국 2위였던 홍준표 후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압도적 차로 패배했다.

이번에도 국민의힘은 두 가지 핸디캡을 안은 채 대선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탄핵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제대로 지지 못하고 '탄핵의 강'에 갇혀 있다. 여기에 상대 진영에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라는 강력한 구심점 아래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위기 상황에서도 김문수·한덕수 후보는 물론, 범보수 진영 전체로 보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단일화 기류에 선을 긋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보수 빅텐트 단일화가 불발된다면 이재명 후보를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단일화 결과가 좋으면 범보수 지지 결속의 계기가 되겠지만, 오히려 크게 싸우면 진영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장성철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후보가 워낙 강력한 만큼, 단일화가 이뤄진다 해도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단일화 성사 자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단일화가 되면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단일화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김문수·한덕수 후보는 5월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단일화 논의를 위한 회동을 가졌지만 합의 사항 없이 빈손으로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캠프의 이정현 대변인은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합의된 사항은 따로 없다고 후보가 얘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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