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트럼프만 문제가 아닙니다"

"트럼프만 문제가 아닙니다. 트럼프를 등에 업은 미국 기업들이 선을 넘는 요구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을 찾은 IT업계 한 인사가 전한 얘기다. 그는 구글이 우리 정부에 반출을 요청한 고정밀 지도 얘기를 꺼냈다.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각국의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고 나선 가운데 구글이 지도 반출 문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연관지으면서 우리 정부와 업계가 모두 난처해졌다는 것이다.
구글이 반출을 요청한 고정밀 지도는 50m 거리가 지도상에서 1㎝로 표현되는 지도다. 구글이 현재 우리나라 지도 서비스에 활용하는 1대 2만5000 축적 지도보다 5배 상세해 동네 뒷골목까지 구분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분단·휴전국가의 특성상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두면 국가보안시설 같은 민감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구글이 국내에 서버를 두면 보안시설을 비공개하는 조건으로 지도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정부는 이런 논리로 국내에 서버를 둔 네이버나 카카오에는 고정밀 지도를 무료로 제공했다.
이런 차이를 구글이 비관세 장벽이라고 문제 삼고 트럼프 행정부 역시 자국 기업의 서비스 제공에 불이익을 주는 비관세 장벽이라고 압박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로선 트럼프 행정부 눈치에 더해 구글 눈치까지 보게 된 셈이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에 우리 정부가 세운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도 데이터를 국외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포함됐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건물이나 지형지물의 위치를 나타내는 단순 지도 정보를 넘어 차세대 첨단기술로 주목받는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구글의 끈질긴 지도 반출 요청을 두고 업계에서 구글이 자회사 웨이모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운영 중인 자율주행 택시 사업을 가장 먼저 거론하는 이유다. 자율주행을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는 다시 인공지능 학습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막강한 자금력과 함께 구글 검색,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소셜미디어 시장을 장악한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까지 확보하게 되면 국내 산업에 대한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전 세계 1위 차량 호출 플랫폼 '우버'가 구글에 비용을 지불하고 구글 지도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차량 호출, 자율주행, 배달 주문 등의 사업이 구글에 종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 전 세계 1000만개 이상의 웹사이트와 앱이 구글 지도 플랫폼을 활용해 20억명 이상에게 쇼핑, 관광, 차량 호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디지털 주권 침해 차원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1966년부터 1조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해 구축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구글이 빈 손으로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다. 구글은 한국에서 올린 매출에 대한 법인세 대부분을 회피 중이다.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발생한 매출의 대부분을 싱가포르에 위치한 구글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로 송금해 국내 매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정확히 얼마를 송금했는지 신고도 하지 않는다. 업계와 학계에선 구글이 지난 20년 동안 국내에서 회피한 법인세 규모가 19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오는 15일 회의를 열고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승인 여부를 심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까지는 관세협상 원샷 딜의 예시로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관련 사안을 우선 언급하고 있지만 디지털 무역 장벽을 협상카드 중 하나로 꺼내들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제 구글만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재계가 좀더 시야를 넓혀야 할 때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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