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R&D 나눠먹을 때… 중국은 ‘떡잎’ 골라 몰아줬다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를 떠나 의대로 가는 것과 달리 중국에선 인재들이 최첨단 기술 분야에 몰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일단 살아남으면, 정부 차원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을 집중 지원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 맞서는 기술 자립을 이루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과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원천 기술 확보를 목표로 실패한 연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 R&D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은 한정된 R&D 예산을 여전히 대학·기업·프로젝트별로 나눠 먹는 문화가 팽배하다.
◇“될 놈 골라 밀어준다”... 中 R&D 지원
‘제2의 딥시크’로 불리는 중국의 인공지능 기업 ‘즈푸AI’. 칭화대 컴퓨터학과 96학번인 장펑 최고경영자가 2019년 칭화대 과학기술원 안에 창업했다. 이 기업이 정부 예산을 받은 것은 2020년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성공한 이후다. 수많은 ‘대학 스타트업’ 속에서 스스로 기술력을 증명하자, 정부가 본격 지원에 나선 것이다. 즈푸AI에 작년과 올해 중국 지방정부가 직접 투자한 금액은 45억위안(약 9000억원)에 달한다. 즈푸AI는 올해 안에 기업공개(IPO)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올해 AI 관련 R&D 예산은 1조2000억원으로 정부 R&D의 약 4% 수준이다. 떠오르는 분야에 R&D 지원도 집중해야 하는데 경직된 예산 체계에서 특정 분야를 대폭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 관계자는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이 기획재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보니 유연하게 예산을 편성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중국의 R&D 지원 방향성은 뚜렷하다. 민간 시장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낸 기업이나 연구팀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이른바 ‘선시후보(先試後補·먼저 시험하고 나중에 지원한다)’ 전략이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선별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될성부른 떡잎을 골라서 성공할 때까지 밀어준다’는 중국의 ‘선시후보 R&D 전략’은 젊은 인재들이 첨단 과학과 기술·공학 분야로 몰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성공 사례들이 중국 첨단 기술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재작년 창업한 ‘바이촨AI’는 벌써 기업 가치가 28억달러(약 4조원)를 넘는다. 이 회사도 중국 정부 R&D 예산의 집중 투자를 받아왔다. 작년 7월에만 50억위안(약 1조원) 투자를 받았는데, 알리바바·텐센트뿐 아니라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지방 정부도 펀드를 통해 투자에 참여했다.
◇성장 기업 발굴·투자하는 中 지방정부
중국 정부만의 독특한 ‘매칭 펀드 시스템’이 효과적인 R&D 투자를 가속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서 연구·개발 관련 예산을 따내려면 우수 기업을 발굴해야 하고, 중앙에서 지원받는 예산과 동일한 액수를 투자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일대일 매칭으로 기업이나 대학 등에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현장에서 우수한 기업을 찾고 투자하는 데 유독 적극적인 배경이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 등은 “중국 지방정부는 중앙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성장하는 기업이나 연구 기관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정부에 이공계 출신이 많고 이들의 기술 이해도가 높은 것도 선별적 R&D의 효율을 높이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소속의 한 중국 대학 교수는 “한국의 경우는 정부 투자를 받고 싶어도 해당 기술이 어떤 것인지 정부 관계자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중국은 공무원들의 기술 이해도가 높아 투자 결정도 신속하게 하는 편”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경쟁력 있는 기업이나 연구 기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R&D 전략을 구사하면서, 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글로벌 유니콘 중에서 중국 기업 비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유니콘 기업 중 중국 회사가 637곳으로 1위 미국(763곳)을 바짝 뒤쫓고 있다.
☞선시후보·용착
선시후보(先試後補):‘먼저 시험(경쟁)을 거치도록 하고 성과를 입증한 대상에게 사후 지원한다’는 의미로, 중국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의 전략이다. R&D 예산을 일괄적으로 배분하는 대신, 민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기업을 선별해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지원책이다.
용착(容錯): 시행착오를 용납한다는 뜻으로, 중국의 연구개발 지원 전략의 바탕이 된 개념. 중국 정부는 약 10년 전부터 이에 기반한 정책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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