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탐구하는데 가장 좋은 관점은 재일 한국인의 시선”

5월 연휴 극장가의 가장 조용하면서 뜨거운 바람은 한 예술영화가 몰고 왔다. 지난달 30일 개봉해 6일까지 독립·예술영화 차트 1위를 지킨 영화 ‘해피엔드’다. 개봉일 관객 1만명이 몰렸고, 곧 4만명을 넘어설 기세다. ‘해피엔드’를 쓰고 연출한 소라 네오(空音央·34)는 최근 약진하는 일본의 젊은 영화를 대표하는 30대 감독이다. 2023년 암으로 별세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아들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해피엔드’는 제81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공식 초청작이다.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소라 감독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미래를 보는 허무주의와 낙관주의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재일(在日) 한국인 주인공을 통해 물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랑했고, 사랑하는 아버지 사카모토 “음악은 하지 마라”
소라 감독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2023)로 국내에 먼저 알려졌다. 사카모토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남기고 싶다”며 아들에게 부탁해 마지막 공연을 필름에 기록했다. ‘오퍼스’ 제작 총괄은 소라 감독의 모친인 소라 노리카(空里香)였다. 소라 감독은 ‘오퍼스’ 개봉 당시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가족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대면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묻자 “일부에서 제 작품을 아버지와 저의 관계로만 해석하려 해서 조심스러웠다”고 답했다. 그의 이름은 모친의 성(姓)을 따랐다. “부모님께서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 그렇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이어 “제게 사카모토 류이치는 사랑했고, 사랑하는, 최고의 아버지”라며 “저는 아버지와 영화도 만들어 본 행복한 아들”이라고 했다.

사카모토는 그에게 성(姓)은 주지 않았으나 그 이외 모든 것, 특히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심어줬다. 소라 감독은 어릴 때부터 그림과 사진, 음악을 좋아했다. 사카모토는 아들에게 “진정한 음악가는 진짜 재능이 있어야 될 수 있다”며 “음악은 하지 말라”고 말렸다. 소라 감독은 결국 그림, 사진, 음악이 모두 들어가는 영화를 인생의 길로 선택했다.
◇일본인 의식 근저에 여전한 제국주의
그는 “아버지께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 끌리셨듯, 저는 일본 역사를 공부하다 재일 한국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 관심은 ‘해피엔드’를 생생하게 살렸다. ‘해피엔드’의 두 십대 주인공 중 한 명인 코우는 재일 한국인 4세다. 그는 근미래가 배경인 ‘해피엔드’에서 수시로 거주 증명서 제출을 요구받고, 일본인 교장은 그에게 “너는 평범한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힐난한다.

소라 감독은 세 번의 지진이 예술적 자의식을 흔들었다고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이다. “관동대지진 때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당했죠. 미래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과연 상황이 달라질까요. 요즘도 도쿄에서 지진이 나면 쿠르드 난민이 문제라는 가짜 뉴스가 퍼지잖아요.” 그는 “제가 보는 일본은 여전히 제국주의 기억이 뿌리 깊게 작동하는 사회”라며 “재일 한국인의 관점이 일본 역사를 탐구하는 데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재일 한국인 묘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코우의 모친은 오방색 조각보 가리개가 걸린 한식당에서 일하며, 가게 차양에 누군가 남긴 ‘비국민(非國民)’ 혐오 낙서를 지우기 바쁘다.
‘해피엔드’는 우정의 소중함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은 유치원 때부터 절친이지만 성인의 문 앞에서 정치적 각성 단계에 이르자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소라 감독은 “사랑했던 친구들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멀어진 기억을 담았다”고 말했다. 두 주인공이 육교에서 인사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관객을 붙든다. 청춘의 화인(火印)처럼 새겨질 추억의 한순간을 고요해서 격정적인 정지 화면에 봉인했다. 소라 감독은 향후 작품 계획에 대해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영화라는 현미경을 들이대보고 싶다”고 말했다.
☞소라 네오(空音央·34)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자랐다. 아버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성(姓)이 아닌 어머니 소라 노리카(空里香)의 성을 따랐다. 미 웨슬리언대에서 영화와 철학을 전공했다. 단편 ‘더 치킨’(2020)이 제73회 로카르노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영화 ‘해피엔드’의 모체가 된 ‘슈거 글래스 보틀’(2022)은 제25회 인디멤피스영화제에서 최우수단편영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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