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지역 화폐’로는 내수 못 살린다
관세전쟁 탓 수출 비상
새 정부 1과제는 ‘내수 살리기’
내수 산업, 수요 기반 키워야

자영업자들이 외환 위기 때보다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도시 중심 상권에서도 공실 가게를 흔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체감 경기가 나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내수 침체는 최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고질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2.0% 중 수출이 1.9%포인트 기여했고, 내수 기여도는 0.1%포인트에 불과했다. 경제성장의 95%를 수출이 이끌었다는 뜻이다. 선진국의 내수 성장 기여도가 5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기형적 불균형이다. 지금까진 수출로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미국발 관세 전쟁 탓에 수출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가 산불 피해 지원, AI(인공지능) 투자 확대, 소비 촉진 용도로 13조원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지만 성장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제1 과제는 경제 살리기가 될 것이다. 경제 살리기의 핵심은 내수 부양이다. 민주당은 이재명표 민생 대책으로 걸핏하면 ‘지역 화폐 10조원 발행’을 주장하는데,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증 요법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책 연구 기관에서 부자 지자체와 가난한 지자체 간 재정 여력 차이 탓에 지역 화폐 발행량이 늘어나면 지자체 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지역 화폐 사용처가 학원·병원 등 원래 써야 할 곳에 집중돼 추가 소비 유발 효과가 미진하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의 내수 불황은 사회 구조적 요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대한상의는 인구 고령화, 고용 불안에 따른 소비 위축, 중장년층 자산의 부동산 편중 등을 내수 부진의 구조적 요인으로 꼽고 있다. 전문가들은 퇴직 후 재고용 활성화, 고령층 자산의 세대 이전 촉진, 증시 밸류업을 통한 금융 자산 비율 확대 등을 내수 부양을 위한 구조 개혁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새 정부는 청년 실업을 악화시킬 정년 65세 연장보다는 기업 단위에서 퇴직 후 재고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서 손자 세대의 교육, 육아, 결혼 자금으로 쓸 경우 2억~3억원 증여엔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처럼 ‘세대 간 자산 이전’을 촉진하는 정책을 다양하게 개발, 시행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에겐 부동산 거래세를 낮춰 부동산에 묶인 자산의 유동화를 촉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업 정책 측면에선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에 빠진 건설업 회생이 급선무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건설업은 철강·시멘트 등 건자재뿐 아니라 이사, 인테리어, 음식점 등 다른 업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큰 내수 산업이다. 고용 근로자가 200만명을 웃돌 정도로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 건설 경기 침체 탓에 3월 중 건설 부문 고용이 1년 전보다 18만5000명이나 줄었다. 건설 경기를 살리려면 미분양 아파트와 부실 프로젝트 파이낸스(PF) 사업장 정리부터 서둘러야 한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대표적 내수 산업인 관광·의료 산업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관광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웠고, 이것이 내수 진작과 지방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 관광청 신설, 외국인 면세 절차 간소화, 외국 저가 항공사 지방 노선 신설 등이 정책 효과를 봤다. 연 600만명 수준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엔 3600만명으로 폭증했다. 그 결과 쌀 부족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음식·숙박업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고 인재가 모여 있는 의료 분야를 내수 산업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외국인 전용 병원을 세우거나, 관광과 연계한 외국인 환자 유치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내수의 성장 기여도를 높이지 않고 수출에만 의존하는 외끌이 경제로는 민생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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