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행위 주체임을 선언하다니…오욕의 사법부 [왜냐면]


정병준 | 이화여대 교수(사학과)
지난 1일 대법원의 판결은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한국 최고 법원이 이 사회와 국가를 지탱할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실낱같던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민주화 이후 극단화된 정치의 사법화 뒤에 사법부의 정치화가 전면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이라는 국가·사회를 지탱해오던 사법체제라는 신뢰의 댐은 붕괴 일보 직전에 놓였다. 한국 사회와 국가가 어디로 가게 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날이다. 대법원은 한국 사회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회로 이끌기보다는 정치적 불안과 위기의 화수분이 되었다. 대법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법적 권한을 최대한으로 행사했고, 이를 되돌리거나 수긍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명령했다.
절제되지 않은 권한과 권력의 남용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 사법부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남긴 수많은 사례를 대표하는 것은 1959년 조봉암 처형과 1975년 인민혁명당재건위 관련자 처형 사건이다.
대법원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216만표를 획득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북한의 간첩으로 법살 했다. 504만표를 얻은 노령의 이승만을 코앞까지 위협했기 때문이다. 유일한 증거는 남북을 오고 간 북파공작원부대(HID)의 이중간첩 양명산의 증언뿐이었다. 양명산은 자신의 증언을 부정했지만,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원래 1심에서 간첩 혐의는 무죄가 선고되고, 신변 경호를 위한 불법무기소지죄만 인정되었다. 1심 판사 유병진은 빨갱이로 몰려 법원에서 쫓겨났다.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의 김갑수, 백한성, 변옥주 등은 일제 시대 판사를 지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 체제에 대한 도전을 억누르기 위해 1974년 인혁당사건을 조작했고, 이 사건은 비상계엄하의 비상보통군법회의(1심), 비상고등군법회의(2심)를 거쳐 대법원에 회부되었다. 대법원 3부의 대법관 4명 중 이일규 대법관이 군법회의 판결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제시하자 전원합의체로 갔다. 일제하 판사를 지낸 민복기 대법원장의 주재로 2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인혁당 관련자들은 중앙정보부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가족 면회나 변호사 접견도 거부당했다. 피고인들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고, 하재완은 장이 탈장되어 항문 밖으로 나올 정도였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한 다음날인 1975년 4월9일 도예종 등 8명이 처형되었다.
두 사건 모두 한국 사법부의 오욕을 대표하는 사법살인이었고, 2000년대 들어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사법부가 이를 사과·반성한 적은 없다. 사건 관련 검사와 법관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 사건에 관련된 대법원 판사 대부분 경성제대 졸업 후 고등문관 사법과를 패스해 일제하 판사를 지냈던 사람들이다. 충성의 대상이 일본에서 독재자로 변경되었을 뿐이다.
이 시절 사법부는 독재자의 푸들이었고, 고문과 조작으로 만들어진 검찰의 공소장을 액면가 그대로 통과시키는 통로였다. 당시 법원이 독재 권력의 정치적 탄압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면, 2025년 5월 대법원은 자신이 정치적 행위의 주체임을 명백히 밝혔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현실에서 법적 효력을 발휘하겠지만, 역사적으로는 사법부의 세번째 오욕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상식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정적을 사냥하기 위해, 정치검찰이 사건을 만들어 기소했다는 것이다. 2심은 무죄를 선언했고 대통령선거의 진행은 순조로울 듯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절제되지 않은 권력의 행사, 절차를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서두르고 허둥지둥한 모습들이 여과 없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 과정에서 특정 인사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는 정치적 호불호를 평가하는 도편추방제(오스트라시즘)에 다름없었고, 특정 후보에 대한 정치적 반대 의사의 법률적 선언이었다. “인상 비평에 근거한 원님 재판이었다”는 분노에 찬 비판이 넘실거리는 이유다. 평의 결과 파면된 대통령이 지명한 특정 대학 출신 사법 동호회의 선호를 반영하는 판결이 되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비교해 살펴보면 현재 사법부의 행태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대칭적이고 부등하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가 무명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저지, 동원된 군인들의 소극적 저항으로 무산된 뒤, 그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1987년 한국의 제도적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계엄령·쿠데타 시도였으며, 현대 한국이 이룬 모든 성취와 가치를 부정하는 반역행위였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의 반역자에게 형사소송법에 어긋나는 70년 만의 특혜가 허용되었고, 그의 구속 취소에 검찰은 즉시 항고하지 않았다. 그는 지하통로로 재판정에 출석하며 사진기자의 촬영도 허용되지 않았다. 500명이 넘는 증인 심문으로 재판은 몇년을 끌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내란에 적극 가담한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공화국 반역자들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관대함이 넘쳐나는 반면, 국민들의 눈과 귀는 막혀 있다.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과 현직 판사를 ‘수거’ 처리하려 했던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나 서부지법 난동사태에 대해 단 한마디 공개 성명을 낸 바 없다. 법원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려 한 민주공화국의 반역자에 대해 침묵의 인사를 건넨 것이다. 반면 역사의 전환기에 정치적 개입을 통해서 대통령 선거를 결정하려고 하고 있다. 최고 법원의 수장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분별과 자각이 없는 정도의 상태라면,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과 후폭풍을 감당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법원의 권위는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위임을 통해 가냘픈 사법 신뢰의 정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현명한 한국인들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사법부의 전면적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그 운명을 결정할 주인공은 법관들이 아니라 무명의 시민들이자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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