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정전의 두 번째 교훈 [36.5˚C]

김현종 2025. 5. 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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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갈에 전례 없는 대정전이 발생했던 지난달 28일 시민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상점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상품을 구매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

충격적이었던 스페인·포르투갈 대정전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국내 보수 언론들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격을 쏟아냈다. 한 일간지는 해당 기사를 1면에 실으며 "재생에너지 탓인가…"라는 제목을 달았고, 한 경제지는 "여러 국가에서 '탈원자력발전소' 움직임이 약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각각 선과 악으로 규정하는 매체들이 스페인 정전 사태를 재생에너지 비판 빌미로 삼는 듯 보였다.

이들이 주목한 건 재생에너지의 '경직성'이었다. 스페인 정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력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뒤 전력의 약 60%를 생산하던 태양광 발전기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력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출력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는(유연한) 화석연료 발전기들과 달리, 대응 능력이 부족한(경직된) 태양광 발전기가 사태 원인이라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합리적 추론으로 보인다.

문제는 해당 매체들이 그 대안으로 '원전 확대'를 슬그머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원전 역시 재생에너지처럼 발전량 조절이 어려운 '경직성 전원(電源)'이란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핵분열을 활용하는 원전은 출력량 조절이 매우 어렵다. 사태 당시 스페인의 원전 비중이 더 높았다 하더라도 대정전을 막을 수 없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따라서 스페인 정전을 대하는 진지한 질문은 '어떻게 전력망 유연성을 확보할 건가'일 것이다. 그간 손쉽게 유연성을 제공해주던 화석연료 발전소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퇴출돼야 하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스페인 정전 사태의 일차적 교훈이다. 전력을 일시 저장·출력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재생에너지에 각각 ‘관성’과 ‘중앙통제 시스템’을 부여하는 장치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고민은 한국 탄소중립 달성에 재생에너지가 필수적이라는 시각에서 그 중대성이 매우 크다. 백업 전원으로서의 원전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경직성과 추가 건설부지 부족,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을 고려하면 결국 재생에너지가 더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원전 종주국'인 프랑스는 주변국과의 전력망 연결을 통해 경직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만 '전력 섬나라'인 한국은 그마저도 어렵다.

그러니 정말 재생에너지 없이 한국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안 그래도 어려운 탄소중립 문제를 일부에서 진영 간 정체성 논란으로 부추기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스페인에선 극우정당 복스(Vox)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를 비난하며 진지한 논의를 방해하고 있다. 정치적 소란으로 비화해 에너지 전환의 사회적 비용만 높이는 스페인 현실이 대정전의 '두 번째 교훈'인 셈이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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