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은 못 지키더라도 김영갑 작품은 보존해야죠”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기록할 거야. 나중에 다 좋아지면 ‘내가 예전에 이 모습에서 이렇게 좋아진 거야’라고 얘기하려는 거니까 괜찮아. 사진 찍어줘.”
2003년 여름, 앙상한 스승의 맨몸을 앞에 두고 차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제자에게 사진작가 김영갑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제야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으로 머리를 축 늘어뜨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같았던 스승의 모습을 제자는 카메라에 담았다. 그 뒤로도 불치병에 절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바람 찍으러 마라도에도 갔던 김영갑은 2005년 5월 바람이 되어 떠났다.
지난 1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만난 제자 박훈일 관장은 지난 20년간 그랬듯, “(김영갑이) 중산간에 못 가면 중산간을 닮은 이곳에서라도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던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1985년 제주에 정착해 중산간의 구름과 오름 사이를 누비던 김영갑은 6년간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임대한 폐교 운동장을 나무·야생초·돌로 채워 작은 중산간을 만들었고, 그 귀퉁이에 잠들었다.

제주를 사랑한 김영갑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몰입하는 황홀감을 안겨준 두모악에서 김영갑 20주기 전시회 ‘김영갑, 인연 그리고 만남'이 다음 달 21일까지 열린다. 제목처럼 전시장에는 사진으로, 그림으로, 글로, 시로, 악보로, 기사로 김영갑을 추억하는 친구, 후배, 기자, 지역 작가 40명의 마음이 모였다. “마비되어 가는 근육 하나하나를 일깨워 만든 미소, ‘김영갑’의 미소 안에서 본 건 ‘사람의 희망’이었다.”(권혁재) “제주 중산간과 오름과 오름 사이를,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선생님처럼 떠돌아 본다.”(양상호) 작품마다 그리움이 한가득이다.
친구·후배·기자·지역작가 40명 모아
관련 사진·그림·글 6월21일까지 전시
작품마다 고인에 대한 그리움 한가득
김영갑의 인연과 지역 작가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작품을 모은 사람 역시 박 관장이었다. “누구보다 김영갑 선생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죄로 평생을 김영갑과 두모악 지킴이로 살았다”(이재은)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이들도 있지만, 박 관장에게는 스승이 아닌 ‘삼촌’(제주에서 친한 윗사람을 부르는 말)을 기리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위로 띠동갑인 삼촌을 만나서 (10년 넘게) 한집에 살았어요. 제가 아침, 점심, 저녁 밥을 해서 드렸고, 제가 없을 때는 삼촌이 밥을 지어서 저희 아버지랑 먹었어요.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은 아니잖아요.” 삼촌의 짐과 작품이 어디 있는지 가장 잘 알기에 자연스럽게 두모악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30대 조카는 삼촌보다 나이 많은 50대가 됐다.

두모악을 지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버텨내긴 했지만 관람객 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주중 200~300명, 주말 400~500명이 찾던 곳에 이젠 하루 평균 60명 정도가 온다. 지난해 7월에는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가 11월 재개관했다. 휴관한 4개월 동안 박 관장은 “최선은 삼촌의 흔적인 두모악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면 작품이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장고 문제부터 해결하려 애썼다. 가난한 김영갑이 고구마, 무, 당근으로 허기를 달래가며 사 모은 필름으로 찍은 작품 500점, 인화 안 된 사진 수만장을 제대로 보관할 방법을 찾아 헤맸지만 소용없었다. 박 관장이 꾸준히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온전히 사진을 보존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한다.
두모악 관람객, 하루 60명으로 급감
운영난으로 지난해 4개월간 휴관도
“수장고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실패
지속가능한 두모악 만드는 게 숙제”
지속가능한 두모악을 만드는 큰 숙제를 하고 나면 박 관장은 삼촌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싶다고 했다. “삼촌이 지금 계셨다면 저에게 ‘너, 사진 안 찍고 지금 뭐 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삼촌이 ‘하루도 거르지 말고 사진 찍으라’고 하셨거든요. ‘두가지 말고 한가지 일만 하라’고도 하셨고요. 이젠 진짜 아무것도 아닌, 순수한 작업자로 돌아가고 마음 편하게 사진을 찍고 싶어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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