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스스로 파괴한, 희대의 전원합의체 판결 [왜냐면]


김제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조윤리)
전세계가 한국의 기적으로 인정하고 우리 국민도 자부심을 가진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양대 산맥이 무너져 내리는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역사적인 일들이 최근 자주 일어난다.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후 여러 무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상식의 실종 와중에 한국의 민주주의 법체계가 심히 흔들려 보였다. 다행히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파면이라는 현명한 결론을 내렸다. 대다수 국민은 헌법재판소의 설득력 있는 논리를 수긍했다. 파면에 반대한 일부 국민들도 그 설득력에 승복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정질서 위기를 극복하는 한편 국민 통합도 이루어냈다.
그런데 법치의 또 하나의 주요 제도인 법원은 본령을 위반하는 행위를 시전 중이다.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피고인 구속취소 결정과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그렇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둘러 회부, 결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최소한의 숙의와 적법한 절차조차 거치지 못한 비상식의 정점이다. 6만장이 넘는 문서를 이틀 정도 검토 후 다수결로 결론을 낸다는 것은 인간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대법원이 시대를 앞서 이미 인공지능(AI) 대법관으로 대체한 결과인가 순간 의심했다. 차라리 인공지능 대법관이라면 상이한 판결을 했을 수도 있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결론의 타당성을 차치하고,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최소한의 품격도 갖추지 못했다. 대법관들 간에 충분히 토론하고 설득하여 통합을 모색하여야 하는 최소한의 과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선 직전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대다수 국민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문제점과 위법성이 일일이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로 공론의 장에서 해부되고 있다. 세간에는 6만장이 넘는 기록을 읽어보기는 했느냐며, 대법원에 대한 온갖 조롱과 희화화가 난무한다. 대법관별 전자기록 열람 로그 기록을 제출하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대법원은 설득력 없는 변명뿐이다. 대법관들이 기록을 읽었는지를 국민들이 의심하며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법원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 것이다. 지귀연 판사의 구속취소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희대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목도하고서는, 대법원장이 이러하니 지귀연 판사도 그러했던 것으로 이해한다. 법조인인 필자가 대선 전 판결 확정은 법적으로 불가능함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미 땅에 떨어진 법원의 신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 못하고 불안해한다. 사법 기득권 세력이 법과 상관없이 무슨 일도 저지를 수 있다고 의심한다.
국민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민 정서법은 포퓰리즘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보편성과 상식의 배반에 대한 분노다. 개인 이재명을 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한 분노다. ‘법관 윤리강령’이 천명하고 있듯 법관 권한의 원천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이다. 즉, 선출되지 않은 법관은 위임받은 권한 내에서 사법행위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법치도 국민주권주의 위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용인된 상식의 범주와 잣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집대성한 것이 우리의 헌법이다. 법관들은 그들이 상대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교육 수준과 정치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사법권 독립과 3권 분립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뒤바뀐 변명이다. 법관 윤리강령에서는 법관은 그 사명을 다 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국민이 법관을 신뢰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직무수행에 있어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할 무한책임을 판사에게 부과하고 있다. 판결과 법관에 대한 존중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고, 존중받을 만한 판결을 통해 사법부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법원이 위법한 판결을 내리거나 헌정질서를 위반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걱정하면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보편성과 상식을 바탕으로 법치를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할 책무를 가진 대법원이 자기 본령과 민주주의를 스스로 파괴한 희대의 사건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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