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마을’의 한국어 생활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외국인 마을’의 언어 사용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에 올 때마다 가보지 못한 곳들을 찾아다니곤 한다. 잘 알려진 안산 다문화거리나 관광지로 유명한 인천과 부산 차이나타운은 진작 다녀왔다.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 인천 함박마을, 김해 동상동 등에 이어 최근 광주 고려인 마을과 목포에서 가까운 전남 영암군 대불공단 앞 외국인 상가를 다녀왔다. 그동안 다녀본 외국인 마을은 공통점도 많지만 인구 구성과 성격에 따라 언어 사용 양상도 퍽 다르다.
우선 한인 디아스포라 중심으로 형성한 대림동 같은 곳을 들 수 있다. 재중동포가 많은 대림동 공동체의 공통어는 중국어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소통할 때는 한국어를 사용한다. 한국어 구사 능력은 다양하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어를 이미 배워 온 사람도 있다. 거리 간판은 중국어가 많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그렇다. 영어를 비롯한 다른 외국어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수의 한인 디아스포라와 다른 외국인들이 함께 사는 광주 고려인 마을 같은 곳에서는 한인들의 언어 비중이 높지만 다른 외국어도 꽤 들린다. 거리 간판은 여러 언어가 섞여 있다. 공동체 안에서 여러 언어 사이에 한국어가 중요한 가교 구실을 한다. 대림동에서는 중국어가 압도적으로 들리지만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는 러시아어 간판이 많고, 여러 언어 가운데 한국어가 자주 들린다.
한인 디아스포라 출신보다 이른바 ‘순외국인’이 더 많이 모이는 김해 동상동이나 영암군 대불공단 앞 외국인 상가 같은 곳은 어떨까. 여러 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 다양한 언어가 오가는데 공통어로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를 쓰는 경우도 많다. 타이어, 크메르어, 벵골어, 싱할라어 같은 아시아 언어 문자 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여러 언어권 사람들이 골고루 찾는 상점은 한국어와 영어 간판을 잘 보이게 하고, 특정 언어권 사람들이 자주 찾는 상점 간판은 그 언어로만 되어 있다.
일정한 지역의 언어 사용 현황을 언어학에서는 ‘언어 경관’이라고 한다. 20세기 말부터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모여 사는 현상에서 비롯한 사회언어학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한국의 여러 외국인 마을을 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된 주제들이 있는데, 그동안 파악한 공통어로서의 한국어 유형 두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한국어의 간소화 현상이다. 한국어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존재한다. 외국인 마을에서는 주로 반말을 사용하는데, 한국 가정이나 친한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반말보다 오히려 더 간소화해서 사용한다. 외국인들끼리는 물론이고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도 아주 간소화한 반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공동체 밖에서 한국인과 접촉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해요체’와 몇마디의 존댓말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공동체 밖에서 한국인과의 접촉 여부는 언어 사용의 주요 변수가 된다.
두번째로 장기 체류 여부가 외국인의 한국어 사용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눈여겨볼 지점이다. 한인 디아스포라 출신 외국인 중에는 한국에 더 오래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취득해 뿌리내리려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기보다는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한국에 오래 살겠다는 의지를 가질수록 한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고,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와 주류 한국 사회 사이에서 언어 가교 구실도 한다.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들의 체류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이와 비례하여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럴 경우 외국인 마을에서 사용하는 공통어로서의 한국어가 주류 사회에서 쓰이는 한국어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들이 늘어날 텐데, 그들이 외국인 마을에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이 외국인 마을을 떠나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것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의 여러 지역의 언어 경관은 과연 어떤 변화를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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