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돈먹는 하마' AI 디지털 교과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5. 5. 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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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초등학교에서 열린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DT) 공개수업에서 초등생들이 AI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교육부가 졸속으로 밀어붙인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가 교육 현장에서 도무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AIDT의 채택률이 전국적으로 32.3%에 지나지 않는 것도 모자라 학생들의 평균 접속률은 1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초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소속 고등학교의 하루 평균 접속률은 4.5%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AIDT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의 반발도 여전하다. 교육부가 자랑하는 '맞춤형 교육'과 '사교육비 절감'이 아무런 설득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교육감까지 나서서 반발하는 교육청도 있다. 4월 29일에는 서울·인천·경기의 교육감들이 AIDT의 추가 개발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교육청에 떠넘겨진 AIDT의 구독료 문제에 대해서도 공동 대응하겠다고 합의했다.

그런데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세계 최초'의 AIDT에 대한 미련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막중한 업무까지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정부가 바뀌는 상황에도 큰 무리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현장 안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기 대선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의 '최선'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다. 1년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에서도 '최선의 노력'은 신물이 날 정도로 자주 들었던 허언(虛言)이었다.

● AIDT는 '돈 먹는 하마'

교육부가 작년에 AIDT에 투입한 예산은 무려 3818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교육부가 AIDT의 개발에 직접 투자를 했던 것은 아니다. AIDT의 개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모든 학교가 AIDT를 교과서로 사용할 것"이라는 교육부 장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에듀테크 기업들이 부담했다. AIDT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시도도 없었고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시범운영도 없었다. 

결국 교육부의 예산은 대부분 AIDT를 활용해야 하는 교사의 연수 비용이었다. 교육부가 장관의 개인적인 알량한 결단을 믿고 교원 연수에 세금을 물 쓰듯 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연수 예산이 지나치게 많아서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교육청도 있다고 한다. 내년까지 교사 32만명의 연수에 1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있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AIDT'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 교사들에게 교육 현장에서 AIDT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교육부의 교원 연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동차를 개발하기도 전에 운전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교육부의 억지를 믿을 수밖에 없다.

세계 최초의 AIDT를 개발한 것으로 국민 부담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모든 학생이 매년 서책형 교과서보다 6배나 비싼 한 해 6만원 수준의 구독료를 내야 한다. 물론 서책형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AIDT의 구독료도 교육청이 전액 세금으로 충당한다. 

AIDT가 교과서의 지위를 잃게 되면 구독료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AIDT 사용에 필요한 스마트기기 '디벗'을 지급하고 인프라를 관리하는 비용도 모두 세금으로 써야 한다. 재물을 무한정 쏟아내는 화수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육부가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밝힌 올해 AIDT 구독료 예산은 무려 3100억원이다. 초3·4, 중1, 고1의 영어·수학·정보에만 AIDT를 사용하고, 채택률이 32.3%였는데도 그렇다. AIDT를 사회(역사)·과학으로 확대하고 초중고의 모든 학생에게 AIDT 사용을 의무화하는 경우에 필요한 예산은 천문학적 규모가 될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 사회가 AIDT라는 '돈 먹는 하마'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 세금을 물 쓰듯 낭비하는 교육부

AIDT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작년 12월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격한 반발로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AIDT가 '교과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되면 에듀테크 기업들이 교육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육부의 억지가 당시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에게 거부권을 요청한 근거였다. 교육부의 그런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4월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호 위원장의 질문에 교육부가 밝힌 소송액의 최대 규모는 3100억원이었다. 결국 교육부가 거액의 배상금을 핑계로 AIDT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에 맞서고 있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개발지역에서 볼 수 있는 볼썽사나운 '알박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언론의 지적도 있다.

세금을 물 쓰듯 낭비하는 일은 이주호 장관에게 절대 낯선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역시 이주호 장관이 '스마트 교육'이라고 밀어붙였다가 시범사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디지털 교과서'에 투입된 예산도 모두 세금이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거액의 배상금이나 AIDT의 구독료를 차기 정부에 떠넘기는 일을 걱정하는 모습은 몹시 생경한 것이다. 그런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영호 위원장의 발언에 따르면 2019년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교과서 업체에 2327억원을 배상했었다. 

이주호 장관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2009년 11월에 무작정 밀어붙였던 교과서 가격 자율화가 문제였다. 우려했듯이 교과서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기 시작했고 결국 박근혜 정부의 2014년 교과서 가격 조정 행정명령에 교과서 업체가 집단소송으로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과서 가격 자율화로 정부의 부담은 늘어났지만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과서의 품질이 크게 향상된 것은 소득이었다. 

AIDT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기대할 수 있는 편익을 찾아볼 수 없다. 세계 최초의 AIDT가 학생의 학업 능력을 다면적으로 파악해서 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억지일 뿐이다. 

학업 성과가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더 큰 학습 효과가 나타난다는 분석은 노동경제학자에서 최고의 교육행정 전문가로 변신한 이주호 장관이 디지털 경제학을 전공한 딸과 함께 발표한 논문의 주장일 뿐이다. 그마저도 세계 최초의 AID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발표된 논문이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고작 2년 전에 처음 등장한 미완성의 미래 기술인 생성형 AI에게는 '교사 자격증'을 충분히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AIDT가 학생의 학업 능력이나 창의성을 다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AIDT의 평가는 에듀테크 기업이 미리 탑재해 놓은 객관식 정답을 확인하는 수준일 뿐이다. 학생의 영어 발음을 교정하는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다. 실제로 AIDT가 시중에서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학습도구보다 학습의 질이 낮고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고 심지어 "AI 같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고 한다.

생성형 AI의 가장 심각한 단점인 '환각'(오류)의 문제도 심각하다. 거대언어모형(LLM)을 기반으로 하는 생성형 AI는 '논리'보다 '언어'를 강조하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AIDT가 기초적인 덧셈·뺄셈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외국어를 엉터리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건이 세는 단위인 '개'와 동물 '개'를 구분하지 못하는 AIDT도 있다고 한다.

수학적 추론 능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생성형 AI가 학생의 '맞춤형' 교육에 필요한 유의미한 질문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는 공허한 것이다.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질문에 맞는 답을 찾아주는 것이 생성형 AI의 주된 임무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다양한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수학·과학의 맞춤형 교육은 현재 수준의 생성형 AI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AIDT를 '인공지능 교육'으로 착각하는 오해도 경계해야 한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졸속으로 만들어내서 세계 에듀테크 시장에서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세계 최초의 AI 디지털 교과서에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AIDT에 의한 교육권 실종과 디지털 중독을 걱정하는 교사와 학부모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에듀테크 기업에게 물어줄 배상금이 무서워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AIDT를 졸속으로 밀어붙인 교육부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진심으로 교육을 걱정하는 교육부 장관을 기대한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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