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손석구, 판타지의 완성점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매사에 무심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지만, 어쩐지 눈만 마주쳐도 방긋 웃는다. 하릴없이 초록색 술병만 바라보며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던 까칠한 얼굴은, 이제 한 사람만을 기다리는 사랑 가득한 얼굴로 바뀌었다.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온 배우 손석구가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통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의 인물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손석구는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극본 이남규 김수진, 연출 김석윤)에서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천국에 도달한 후 아내를 기다리며 지상에서 온 편지를 배달하는 천국의 우편매달부 고낙준을 연기한다. 그가 살아가는 천국은 우리가 아는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자신이 머물고 싶은 나이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입성 전 선택할 수 있다.
이승에선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긴 시간을 병상에서 보내야 했던 고낙준은, 천국에선 30대의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가 기다리던 아내 이해숙(김혜자)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 그러니까 80대의 모습으로 천국에 도착한다. "스물에도 예뻤고 마흔에도 예뻤지만 당신 지금이 제일 예뻐요. 하루 같이 살면 하루 더 정이 쌓여서 예쁜건가. 지금이 우리 마누라 제일 예뻐요"라고 했던 고낙준의 말을 떠올린 탓이다.
30대 남편과 80대 아내라니. 천국에서 재회한 후 이해숙이 품었던 불만처럼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사이좋은 아들과 어머니로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다만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고낙준은 건강한 몸으로 이해숙과 재회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여러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가운데 고낙준과 이해숙의 관계는 여전히 단단하고 따뜻하고 다정하며 사랑이 가득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죽음 이후 재회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 삶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따뜻하게 되묻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손석구가 있다. 그는 고낙준을 통해 한결같은 사랑과 헌신,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조용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낸다. 능청스럽고 유쾌하게, 때론 애틋하고 절절하게. 그의 연기는 다양한 감정의 결을 유연하게 오간다.
실제로 42살 차이가 나는 손석구와 김혜자가 부부 호흡을 맞춘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각에서는 '과연 몰입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자 두 배우의 연기 합은 '저 세상 케미'라는 표현으로 불릴 만큼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손석구는 이해숙을 대하는 고낙준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도 깊은 감정을 담아내며 상대 배우를 자연스럽게 빛나게 한다. 단순히 젊은 남편이 나이 많은 아내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애정을 정제된 감정선으로 그려낸다. 김혜자와 손석구가 주고받는 눈빛만으로도 시청자들은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을 초월하는 진짜 사랑의 본질을 목격한다.
지금까지 손석구가 그려온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어둡고 내면의 고통을 지닌 캐릭터가 주를 이룬다. 많은 시청자가 그를 추앙하게 했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는 삶에 의욕을 잃은 채 방황하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는 군대 조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임지섭으로, 영화 '범죄도시2'에서는 냉혹한 빌런 강해상으로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무채색에 가까운 얼굴로 어두운 캐릭터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온 손석구였기에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보여주는 파스텔톤의 연기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극 중 고낙준은 생전 아내가 꿈꾸던 집을 기억해 그대로 구현하고 상대를 기다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함께할 공간으로 실현하는 남자.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고낙준은 손석구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었던 감성적이고 온기 어린 인물이다. 하지만 이 변화는 단순한 이미지 전환이 아니다. 그간 쌓아온 내공에 새로운 결을 더한 '감정의 확장'이며, '사랑을 연기하는 손석구'라는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손석구에게 새로운 도전을 넘어, 연기 인생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작품이다.
이제 손석구는 특정 장르나 정서에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한 로맨스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며, 그리움과 다정함을 감정의 언어로 녹여낼 줄 아는 배우로 연기의 폭을 넓였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 이야기는 단지 그의 필모그래피에 적힐 또 하나의 작품이 아닌, 손석구라는 배우가 천천히 도달한 감정의 정점이자, 어쩌면 손석구라는 배우가 품은 연기 천국에 다다르기 위한 또 하나의 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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