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품은 메시지보다 상상의 공간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죠!”
신작 ‘물고기는 땅 위에서 걷는 법…’ 전시
소로 <월든> 영상 설치에도 사운드 참여
“비위계적인 세상 인식이 창작의 원동력”

“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작품을 만들지는 않아요. 저는 무엇에 대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함께’ 작업합니다. 재료, 생각, 소리, 이미지와 함께 작업하죠. 그것은 아주 시적인 과정이에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죠.”

하이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영상 작품을 보면 물고기도 살 수 없을 만큼 자연이 망가지는 것에 대한 심각한 경고 같은 게 느껴진다. “생태적 재앙에 대해서라면 이미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작업에선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나야 해요. 상상이나 성찰,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어떤 것, 어쩌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것들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뿐일지도 몰라요. 이건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실제 현대 음악과 연극의 거장인 하이너는 자신이 작곡가, 연출가, 다큐멘터리 감독 중 어떤 걸로 불리길 원하느냐고 묻자, “예술가 혹은 작곡가”라고 말한 뒤 “소리뿐 아니라 소리와 이미지 간의 분리와 연결, 보컬, 목소리 작업이 들어가는 것도 모두 작곡의 일부이고, 작곡가로서 아카이브된 목소리와 작업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 참석 이후 1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하이너는 또 이번 작업의 다른 층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가 이 실험실을 촬영한 건 5년 전인데, 지금은 그 장소가 완전히 파괴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앞서 ‘멜랑콜리’라는 말을 썼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작업 속에는 짧은 역사, 더 긴 역사 같은 여러 층의 시간과 기억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저는 녹색당 당원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작업 대부분이 생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정치적 질문에 헌신돼 왔습니다. 그런데 <월든>을 읽으며 또 하나 흥미롭게 느낀 지점이 있습니다. 소로가 기차 소리, 새 소리, 나무 소리 등 서로 다른 소리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고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위계적인 감각, 비단 소리뿐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그 방식이 저에게는 매우 정치적이면서 예술적으로 중요한 힘,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예술의 사회적 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구했다. “저는 예술이 논쟁이나 메시지, 정치적 발언의 영역을 점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우리를 해방하는, 창작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열어주는 시적인 공간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술은 또 하나의 정치 연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각자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가 열리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의미와 의견, 메시지들 전체주의적인 시선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술은 ‘자유의 공간’으로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더 매진하고 싶거나 작업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앞으로 찾을 거예요. 아니면 그 주제가 날 찾을 겁니다.” 그의 나이 일흔 둘이다. 하이너와 이번 작업을 함께한 르네 리베르 촬영감독은 그에 대해 “열정(passion) 혹은 삶의 리듬이 그를 지탱하는 에너지 같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