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빛과 소리가 길어 올린 위엄과 따스함

2025. 5.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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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경기도 화성의 남양성지성모성당은 걸어 들어서는 순간부터 "건축이 과연 사람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진입로에서 성당 입구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순례자의 길'은 마치 명상의 여정이었고, 길을 걷는 동안 세상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 대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만나는 좁고 어두운 계단은 인상적이었다. 빛 대신 어둠과 한데 섞여 있어도 그 어둠은 전혀 두렵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서 보라"는 배려로 느껴졌다. 천국을 향해 조심스레 올라가는 계단 같은 이곳은 계단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딱 알맞은 정적과 함께 주어졌다.

그러나 그 정적의 끝에서 마주한 대성당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높이 50미터에 달하는 두 개의 원통형 타워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단상으로 내려와, 단상의 제단 위에 온전히 집중되는 광경은 극적이었다. 단상 뒷벽면의 기다란 창과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단풍나무 루버 사이로 부드럽게 퍼져, 내부 전체에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향연을 펼쳐냈다. 마치 건축가는 이곳을 '하늘에 가장 가까운 장소'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어느새 공간이 주는 위엄과 침묵으로 의자에 앉아 묵상을 했다. 묵상 후 내가 앉은 단풍나무 의자를 바라보니 묘한 감동이 느껴졌다. 의자는 꼭 "겸손"이라는 말을 목재로 형상화한 듯했다. 의자 등받이의 높이와 형태가 신부가 서 있는 단상을 바라볼 때 시선에 방해가 없고, 뒤에서 앉아 있는 다른 이들의 머리도 가리지 않았다. 배려의 아름다움이 의자에 구현됐다.

"대성당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단상의 반대편에는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성당과 교회 건축물은 설교는 분명하고 또렷하게 들려야 하므로 울림이 강해선 곤란하고, 파이프오르간 같은 악기 소리는 오히려 공간적인 울림이 있어야 더 아름답게 퍼진다. 게다가 천정이 높고 넓은 공간은 소리가 공중에 갇히거나 돌아다니기 쉽다. 아쉽게도 그날은 연주를 들을 수 없었지만, 후일을 기약했다.

마리오 보타가 사용한 주요 재료는 붉은 벽돌, 석재, 그리고 목재다. 성당 외벽은 무려 60만 장의 붉은 벽돌을 쌓았고, 바닥은 짙은 색상의 다듬지 않은 석재를 사용했다. 내부는 목재를 사용하여 빛과 소리가 교감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제대와 의자, 문, 손잡이, 계단 레일 같은 세세한 요소들까지 건축가가 직접 설계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건축가의 고집스러울 정도의 통일성 추구는, 마치 한 명의 예술가가 캔버스 전체를 혼자서 채색하고 싶은 열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 덕분에 "이 건물은 도대체 누가 지었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한 몸처럼 조화로울 수 있을까"라는 감탄만 남게 됐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자연 환기와 냉난방 시스템이다. 성당이 위치한 지형적 특성을 살려, 건물 외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부를 스치듯 지나가고, 더운 공기는 타워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실내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내부 열을 보존하면서도 쾌적함을 유지한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일 뿐 아니라, "건축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이곳은 예배라는 종교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침묵과 존경의 순간'을 체험하는 공간이었다. 마리오 보타의 탁월한 설계는 물론이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애쓰신 이상각 신부와 수많은 분의 헌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빛과 소리, 공기라는 자연의 요소를 온전히 끌어안고, 사람과 교감하며, 영적 고요 속으로 안내하는 이곳은 내게 진정한 건축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의 고전적 명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남양성지성모성당에 서 있는 동안, 건축은 그 이상의 것을 품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빛, 소리, 그리고 인간이 함께 교감하며 만들어 내는 침묵의 순간-바로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건축이 아닐까. 앞으로 이곳처럼 위엄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언젠가 다시 방문해 파이프오르간의 소리를 꼭 들어보고 싶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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