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난민 코알라를 살처분하다니…[생명과 공존]

2025. 5.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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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지난 4월 7일(현지시간) 산불로 잿더미가 된 캥거루섬의 케이프 보르다 부근 숲에 부상을 당한 코알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4월 호주 빅토리아주는 헬리콥터를 동원해 700마리의 코알라를 사살했다. 헬리콥터에서 총으로 동물을 죽이는 걸 항공 살처분이라고 한다. 서식지 파괴와 기후변화로 급격한 개체 수 감소를 겪고 있는 코알라는 2022년 호주 3개 주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빅토리아주에서는 보호종이 아니다. 최근 산불로, 코알라의 주식인 마나굼 나무가 많은 부지 빔 국립공원에서 2,000㏊가 넘는 숲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주 정부는 굶주림에 죽어갈 코알라를 위한 인도적 안락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과연 이 방식을 지속 가능한 대응이라 볼 수 있을까.

빅토리아주의 코알라 살처분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캥거루 아일랜드에 1920년대 도입된 18마리 코알라가 1990년대까지 2만 마리로 폭증하자 숲 황폐화를 우려해 살처분이 제안됐다. 시민의 반대로 대규모 중성화와 이주 방안이 시도됐고, 이후 코알라 밀도가 어느 정도 감소했다. 반면, 케이프 오트웨이 지역에서는 1980년대 도입된 75마리 코알라가 2000년대에는 8,0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났고 주정부는 2013년부터 약 700마리를 약물을 이용해 살처분했다. 시민의 반발을 두려워해 살처분을 비밀리에 진행하면서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캥거루 아일랜드와 케이프 오트웨이 지역은 야생 코알라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관광지로 소개된다.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후위기에서 동물은 가장 취약한 존재들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제로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기후난민이라고 부르듯, 화재로 서식지를 잃은 코알라는 '동물 기후난민'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제공된 인간의 인도적 해결책이 살처분이었다는 점은 깊은 실망을 준다. 개체 수를 조절하는 과학적 접근은 중요하지만, 과학적 효율성이 윤리적 책임과 감정적 요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겠지만 항공 살처분 말고도 이주와 중성화 정책 등 대안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이제 인간은 동물을 위해 효율성뿐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동물 기후난민의 고통을 과학만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면, 우리는 기꺼이 감성적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윤리적 감수성과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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