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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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신앙을 상실했다.
신앙이 상실된 시대.
물론 작금의 한국은 일부 개신교 목사가 정치 집회를 주도하고, 파면된 대통령이 무속 신앙 논란에 휩싸인 '신앙 부흥 시대'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 교황의 선종에 신앙이 돌아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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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 임한 삶에 대한 추앙
'약자의 편에 서다' 종교·정치 같아

현대는 신앙을 상실했다. 현대인은 신을 향해 삶의 난제를 묻기보다 과학적 증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신의 뜻을 좇기보다 개인의 이성을 따른다. 영적 충만보다 물질적 충족에 열광하고, 보이지 않는 믿음보다 보이는 권력을 맹신한다. 우상 숭배와 물신 숭배, 급기야 인공지능이 신을 대체하는 불경한 상상마저 현실이다.
신앙이 상실된 시대.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 교황의 선종은 대다수(약 68억 명)에겐 먼 일에 가깝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 당장 대통령도 없는 나라에서 이역만리 종교 지도자의 부재는 다수의 관심사에서 한참 벗어난다. 물론 작금의 한국은 일부 개신교 목사가 정치 집회를 주도하고, 파면된 대통령이 무속 신앙 논란에 휩싸인 '신앙 부흥 시대'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시대성을 고려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각별하다. 지난달 21일 선종 이후 서울 명동대성당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에는 닷새간 수만 명이 다녀갔고, 같은 달 24일 국내 각 지역 교구에서 진행된 추모 미사에도 수만 명이 참석했다. 비신자도 많았다. 역대 교황 선종에 비춰 전례가 없다. 같은 달 26일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열린 교황의 장례식에는 한국인을 포함해 25만 명 이상이 모였다. 선종 직전 출간된 교황 자서전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그를 조명한 영화도 다시 흥행했다.
추모 열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 교황의 선종에 신앙이 돌아온 걸까. "교황은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고, 가장 보잘것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움직여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다"(유흥식 추기경).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 정의, 그리고 평화를 향한 교황의 끊임없는 헌신으로 기억하겠다"(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교황의 부재보다 교황의 인간적 삶에 대한 추모다.
돌아온 건 신앙이 아니다. 최고 권위의 성직자였으나, 가장 낮은 곳에서 헌신했던 인간을 향한 추앙이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으나, 아무것도 누리지 않았던 인간을 향한 경외다. 약한 이들을 향했던 교황에게 한국은 빼놓을 수 없는 나라였다. 2014년 8월 방한한 교황은 국가적 트라우마 세월호 참사에 "인간적 고통 앞에 정치적 중립은 없다"며 국민을 위로했다. 생전 방북을 추진하며 한반도 평화를 호소했다.
추앙이 신앙의 빈자리를 메운다. 교황 방한 이후 국내 가톨릭 신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600만 명에 이른다. 그의 장례식에는 노숙인과 난민, 빈민들이 세계 정상들과 나란히 자리했다. 그가 남긴 재산 100달러(약 14만 원)는 값을 매길 수 없다. 이름만 새긴 장식 없는 그의 무덤은 역대 교황의 무덤 중 가장 아름답다. 교황의 인간적 삶을 통해 신성을 확인했다.
대선(6월 3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교황의 삶에 비춰 대선 후보들을 본다. 교황과 대통령을 견줄 수 있냐는 비판이 들린다.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종교라면 정치도 다를 바 없다. 누가 가장 힘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나. 누가 개인 안위보다 국민 안위를 우선하는가. 권력을 잃고도 국민의 대통령으로 기억될 이는 누구인가. 한국의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
강지원 문화부장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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