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국립국악원장 논란, 국가유산 행정 체계의 모순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2025. 5. 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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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필로 스페이스 고문)

"국립국악원장은 행정직이 맡아선 안 된다!" 2025년 3월 9개월째 공석이던 국립국악원장 자리에 국악 전문성이 없는 고위공무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자 전·현직 예술감독과 학계, 국악원 비상대책협의회까지 "국악의 정체성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전문성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며 반발했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33인도 원장 공모절차 중단과 재공모를 요구했다.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국악원장직을 행정공무원도 응모할 수 있는 개방형 직위로 전격 전환한 점이 논란을 키웠다. 이 사건은 인사갈등을 넘어 우리나라 국가유산 관리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

2024년 5월 60여년을 이어온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새롭게 출범했다. 단순한 명칭변경이 아니라 일제의 잔재인 '문화재'라는 용어에서 벗어나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까지 포괄하는 '국가유산' 체계로의 대전환이었다. 국제기준과 유네스코 흐름에 부합하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하지만 명칭과 정책관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행정체계엔 여전히 낡은 틀이 남아 있다. 가령 국가유산 관련 법·정책·제도는 국가유산청이 관장하지만 소장 유물의 관리·전시·공연이나 교육 등은 문체부 소속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국악원이 맡는 등 이원화 구조는 그대로다. 국가유산청이 문체부 외청이고 인사·예산 등에서 연계되긴 하지만 두 조직의 업무는 엄연히 다르고 서로 독립적이다.

이런 이원화한 체계는 정책실행의 일관성을 저해한다. 2025년 2월 국립한글박물관 화재 당시 유물 이동과정에서 국가유산청과 문체부 소속 기관간 협업에서 혼선이 드러났고 2023년 청와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기와 등 유물관리 주체와 관람방식 등을 두고도 기관간 혼선문제가 국회에서 지적됐다. 국외 유물 반출시 국가유산청장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중앙박물관이 해외 전시를 결정한 후 사후통보하거나 무형유산법 제정 논의시 청은 종목만 지정하고 각종 진흥사업은 문체부 소관임을 주장하는 등 정책혼선을 빚기도 했다. 국악원장 선임논란 역시 이런 구조적 모순 때문에 빚어졌다. "왜 국가유산을 관리하는 조직이 2개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국가유산 관련 문체부 소속 기관과 국가유산청의 기능이 분리·중복되는 구조는 결국 행정 비효율과 정책혼선, 갈등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해외 사례를 보면 주요 국가들은 이미 유산관리 체계의 일원화를 이뤘다. 일본은 2018년 문부과학성 소관 박물관업무를 문화청으로 이관해 유산행정을 일원화했고 프랑스는 건축국, 박물관국, 아카이브국으로 분리된 업무를 '문화유산및건축총국'으로 통합했다. 중국 역시 국가문물국이 문화유산과 박물관 사업을 총괄하는 단일 책임기관이다. 이런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통합은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라 각 조직이 본연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문체부는 K콘텐츠 세계화, 창작지원, 스포츠 및 콘텐츠산업 육성 등 현대적 문화정책에 집중하고 국가유산청은 전통문화, 유물, 공연, 교육 등 국가유산업무를 일관되게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국악원 등 유산 관련 문체부 소속 기관의 국가유산청 이관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 문화기반과 등 유관부서들도 기능이관 및 조정을 통해 체계적인 협력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유산 관리체계 개편은 조직간 업무영역 다툼이나 조직 이기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을 위해 각 기관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기대선이라는 정치적 전환점을 맞아 국가유산 행정체계의 일원화가 시대적 과제로 대두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과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일, 이 2가지 국가적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개혁이다. 지금이야말로 골든타임이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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