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 농부다] 여유를 우리다, 꽃차로 전하는 작은 쉼표

오세현 2025. 5.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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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곁 홍천 남면으로 돌아온지 5년
가업 주작목 구절초 등 꽃차 재배·판매
무농약·건조·증제 과정 거쳐 효능 향상
무드등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 인기
꽃차 대중화 방안 티백 제조·유통 목표
“쉼과 여유가 있어야 즐기는 꽃차
힘들 때마다 쉬어가는 공간 되길”

10. 신경립 하립골 실장

 

▲ 신경립 하립골 실장

여유가 아쉬운 시대다. 짬이 나면 손에는 어느새 휴대폰이 들려 있다. 눈도, 뇌도 도무지 쉴 틈이 없다. 여유가 사라지면서 세상은 더욱 각박해졌다. 신경립(38) 하립골 실장이 꽃차에 뛰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랜 시간 차를 우려내고 눈으로, 코로 음미하면서 마셔야 하는 꽃차는 쉼과 여유가 있어야 즐길 수 있다. 하립골 마을이 힘이 들 때 마다 쉬어갈 수 있는 ‘숨겨진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신경립 실장을 그의 농장에서 만났다.



■구절초 피는 마을 하립골

홍천군 남면 월천길. 하립골 가는 길은 푸른 녹음으로 가득했다. 한적한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숨통이 트였다. 조금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언덕에 위치한 하립골에 서면 동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구절초 밭을 보고 있으면 이 곳의 시간은 밖과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립골은 오는 이들을 넓게 품었다. ‘구절초 피는 마을’ 하립골은 신경립 실장의 어머니 용금옥 대표가 꾸린 곳이다. 구절초가 주 작목이며 다양한 식용 꽃으로 꽃차를 재배하고 판매한다. 일절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다는 자부심 덕분인지 한 번 구매한 이들은 재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계절마다 선보이는 꽃차도 모두 다르다. 봄에는 목련과 진달래, 복숭아, 벚꽃이 대표 상품이고 여름은 아카시아가 많은 사랑을 받는다. 가을에는 하립골의 정체성이기도 한 구절초가, 겨울에는 동백이 고객들을 사로잡는다. 하립골은 꽃을 따다 깨끗하게 말리고 꽃차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꽃을 찌는 증제(蒸製) 과정을 거쳐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신 실장이 하립골에 뛰어든 지는 5년 남짓. 대형 호텔 식음료 분야에서 일을 하다 부모님 곁에 머물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꽃차 만드는 일을 거들었던 그에게 하립골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힘을 보태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골로 내려왔다. 방학 때 마다, 주말마다 일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이 업에 뛰어들고 나니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후 7시만 되면 사방이 고요해지고 불빛이 꺼지는 마을의 풍경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나고 생활한 그로서는 이 시골이 생소했다.

신 실장은 “서울은 오후 7시면 한창인 시간인데 이 곳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며 “그 어두웠던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초보농부의 일상

그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풀 뽑기에 쓴다. 돌아서면 자라 있는 풀을 뽑고 나무를 베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육체 노동을 하다보니 쉴 틈이 없다’는 어머니 용금옥 대표의 말은 신 실장의 지난 5년을 대변한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이 주가 되다 보니 밀려드는 택배를 처리하고 포장 박스를 접는 일도 그의 몫이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초보 농부이니 각종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겨울이나 돼야 그나마 사나흘 휴가를 꿈꿀 수 있지만 지금의 삶이 나쁘진 않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또다른 기회를 줬다. 홍천군 4-H에 가입해 사무국장과 부회장, 강원도 연합회 체육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과의 접점을 넓혀갔다. 정장을 입고 사회도 보고 아직 대표는 아니지만 ‘대표님’ 소리도 듣고 있다. 플리마켓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제품을 소개하고 인연을 쌓고 있다. 호텔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고객들 응대하는 일 하나는 자신있다는 그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계속 유지했다면 누릴 수 없었던 보람과 즐거움이다.

“마리골드는 루테인이 풍부해 눈 건강에 도움을 주고, 구절초는 관절과 혈액순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할 때면 제법 ‘프로’ 농사꾼의 모습도 엿보인다.

신경립 실장은 “호텔에 다녔으면 접해보지 못했을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며 “SNS를 보면 또래와의 조금 다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그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적응 중”이라고 웃어보였다.

▲ 하립골에서 판매하는 꽃차 세트

■삶에 쉼과 여유를

그는 꽃차의 매력으로 여유를 꼽았다. 바쁘게 먹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커피나 믹스커피와는 달리 꽃차는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신경립 실장은 “커피는 바쁜 일상에 짬을 내서 빨리 마신다면 꽃차는 시간을 들여 주전자에 꽃이 피는 모습도 보고 여유를 가지고 마실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꽃차를 통해 고객들이 여유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은 휴식을 선물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확장됐다. 하립골은 최근들어 조금씩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구절초 꽃차나 비누 만들기, 강아지 비누 만들기, 무드등 만들기를 비롯해 팜 카페도 즐길 수 있다. 올해의 경우 6월, 7월까지 예약이 잡혔다.

비누나 무드등을 만들 때에도 손재주가 없어 망칠까 망설이는 고객들이 신경립 실장의 응원에 힘입어 그럴싸한 결과물을 받아들고 좋아할 때 마다 보람도 느낀다.

신 실장은 “서너살 아이들도 비누나 무드등을 만들고 나면 뛸 듯이 좋아하고 성취감에 뿌듯해 할 때가 많은데 그런 모습을 보면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체험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차 한 잔 하면서 테라스에서 구절초 밭을 내려다 보고 조금이라도 쉬기를 바랄 뿐이다. 하립골을 찾은 어느 이는 3시간을 내리 풍경만 바라보기도 했다. 풍경과 여유에 취해 조금만 더 머물길 바라는 이들도 많다

신 실장이 하립골이 ‘너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소’가 되길 바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힘든 일상에 지쳐 잠시 찾아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하립골이 그런 장소가 되길 원한다.

신경립 실장은 “진정한 휴식은 가만히 있는 것”이라며 “쉰다는 이유로 어딜가서 무엇인가를 한다면 눈과 뇌는 계속 움직이고 생각을 해야 한다. 가만히 ‘멍’ 때리고 있는게 진짜로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년 농부의 고민

가업을 물려받은 그의 고민은 꽃차의 대중화다. 어머니 용금옥 대표가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꽃차는 이제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그래도 다른 차나 커피와 비교하면 여전히 생소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신경립 실장은 꽃차의 대중화 방안으로 티백을 고민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일상에서도 쉽게 텀블러에 꽃차를 우려내 마실 수 있는 그 날을 꿈꾼다.

그는 “캐모마일 등 꽃차 티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하립골에서도 티백을 만들어 고객들이 꽃차를 편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같은 길을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들려줄 한 마디를 부탁했더니 “너무 고민하지 말라”는 답을 들려줬다.

신경립 실장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생각만 하기 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조금씩 내디뎌보길 바란다”며 “일단 행동을 하면 농업기술센터도 있고 관련 기관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생긴다”고 했다.

시간마저 멈춰있는 듯한 하립골에서 청년 농부의 꿈은 그가 만드는 꽃차처럼 은은하고 향기롭게 익어가고 있다. 오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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