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다시 생각한다 [세상읽기]


김준일 | 시사평론가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을 얘기할 때 우리는 케이(K)자를 단어 앞에 붙인다. 케이를 굳이 번역하자면 ‘한국적’ 정도가 되겠다. 과거 한국적이란 수식어는 비정상에 대한 옹호거나 유별난 특징에 대한 경멸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박정희의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부른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케이는 대체로 한국의 독특함을 나타내는 긍정적 접두어다.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푸드 등. 하지만 12·3 비상계엄을 거치며 접두어 케이에 대해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케이엘리트는 한국을 이끌어온 고학력 능력주의 관료들을 의미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관료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이 보여준 케이엘리트의 민낯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윤석열이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단행했지만 관료들 상당수는 제대로 항명조차 하지 않았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들이 케이엘리트에게 신뢰를 보여준 것은 최소한 그들이 공적 마인드를 가졌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관리해야 할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위해 본인의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다 갑자기 출마해버리는 무책임을 지켜봤다. 케이엘리트의 파산을 지켜본 것이다.
케이법조인은 어떠한가. 서울대 법대 등 명문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패스한 그들은 케이엘리트 집단을 구성하는 중추였다. 특히 대법원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법조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그들은 엘리트로서의 자의식은 남았지만 민주적 절차에 대한 몰이해와 국민들에 대한 경멸로 점철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판결문에 나온 단정적이자 오만한 표현이었다. 판결문에는 “골프 발언이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그 의미를 확정하면, 골프 발언은 피고인이 김문기와 함께 간 해외출장 기간 중에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적혀 있다. 국민들이 해당 발언을 판단할 여지를 주지 않고 우리 대법관이 확정하면 그게 곧 법이자 진리라는 태도다. 윤석열이 국민들을 계몽하려 했던 것처럼 법관들도 국민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케이정당은 과거보다 퇴화하고 있다. 민주적으로 정당에서 선출된 대통령 후보와 아무런 권한도 없는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를 당 지도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당내 경선은 월드컵 지역조별예선보다 못한 2부리그로 전락했다. 당에서 뽑은 후보가 단일화를 빨리 추진 안 하면 언제든 끌어내릴 기세다. 원칙 있는 승리가 제일이고 원칙 있는 패배가 다음이고 최악은 원칙 없는 패배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언은 화석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우리가 믿을 것은 케이민주주의다. 불법적 폭력적 비상계엄을 겪었음에도 국회의원들은 절차를 지켜 평화적으로 비상계엄을 해제했고 헌법재판소의 법적 절차를 통해 윤석열을 파면했다. 그 와중에 많은 국민이 장으로 나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연대를 표시했다. 민주주의는 자연히 오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야만 지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쳤고, 전세계에 케이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케이민주주의 역시 불완전하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소수 강경파의 위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은 항상 상대방의 위협을 과장되게 말하며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온건파들을 제압하는 쪽으로 작동한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적인 절차는 무시되고 소수의 강경파 지지를 얻는 사람이 결국 권력을 획득하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과도하게 법을 적용해서 상대방을 탄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선택적으로 법을 집행하기도 한다. 우리 편에겐 관대하게 상대편에겐 가혹하게 법이 집행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사라지고 법치주의가 아닌 법기술자의 정치가 판치게 된다.
우리 앞에는 케이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선에는 오직 단일화와 사법리스크만이 이슈로 부각되며 저출산 위기 극복, 지방소멸, 경제 회복 등 중요한 선거 어젠다는 실종되어버렸다. 하지만 케이국민, 한국 사람들은 현명한 판단을 해왔다.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을 수식하는 케이가 찬탄의 대상이 될지,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될지 가늠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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