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을 짝사랑했던 추억을 노래한 ‘동무 생각’

봄이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가곡으로 '봄 처녀', '봄이 오면', '동무생각'을 꼽을 수 있다. 그중 과거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오랫동안 음악교과서에 실린 가곡이 '동무생각'이라고 한다. 1절에서 4절까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특징에 여학생의 모습을 묘사했고, 각 절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로 끝나 짝사랑했던 여학생만 곁에 있다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짝사랑에 대한 외로움이 함께 표현돼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후략)"
이 곡은 박태준(朴泰俊, 1900~1986)이 작곡한 곡에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이 가사를 붙였다. 박태준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개신교계 재단이 운영하는 대구 계성중학교에 다녔다. 음악을 좋아해 대구제일교회 오르간 연주자가 됐고 숭실전문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그 후 이은상의 부친이 설립한 마산의 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두 사람은 음악교사와 국어교사로 만났다. 곡과 시가 만나는 음악적 감정으로 통했을 두 사람은 자주 대화를 나눴고, 박태준은 첫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대구제일교회에 함께 다니던 신명여고 여학생을 짝사랑했다.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재현하기를 "어느 날 그 소녀가 들어오더니 합창 연습하는 단원들에게 과일을 나눠 주는 거예요. 저는 그 소녀가 제게 다가올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해져서 피아노 뒤에 숨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과일을 예쁜 손수건 위에 두고 갔더라고요. 결국 그 여학생은 일본으로 유학하러 갔습니다"라고 했다.
박태준은 내성적인 탓에 말 한마디 붙여 보지 못했고, 그녀는 졸업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가 버렸다. 그녀는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해 법조인과 결혼했으나 경주에서 대구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은상은 사연을 듣고 "그 소녀와 청라언덕을 노래로 만들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면 어떻겠느냐?"고 하며 그가 가사를 써 주면서 곡을 쓰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1922년에 작곡된 노래의 제목은 친구를 생각한다는 뜻의 '사우(思友)'였지만 뒤에 우리말인 '동무생각'으로 바뀌었다. 훗날 박태준은 이은상의 소개로 그의 고종사촌 여동생과 결혼했고,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선구자로서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초대 학장,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유명한 동요인 '오빠 생각', '새 나라의 어린이', '맴맴' 등 주옥같은 동요와 가곡 150여 곡을 남겼다.
대구의 청라(靑蘿)언덕은 박태준이 다닌 계성학교에 있었던 푸른 담쟁이를 가리키는 말로, 언덕 위에 세워진 동산의료원 선교사들의 붉은 벽돌 사택을 푸른 담쟁이가 덮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판에는 "여기에 뿌리 내린 이 사과나무는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의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곳 사과나무가 그 지역 일대에 퍼지면서 약령 시장으로 알려졌던 대구가 사과의 산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새 생명이 피어나는 봄날에 짝사랑했던 학창 시절의 순수한 감성이 아름다운 가곡으로 남아 봄날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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