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배경 옛 광주적십자병원…연휴 간 방문객 줄이어

박정석 기자 2025. 5. 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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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남대병원 폐쇄 후 11년만
1층 응급실·복도·뒷마당 등 개방
어린이날 가족 단위 방문객 ‘눈길’
자녀들에 ‘광주 공동체정신’ 교육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의 자발적 연대정신을 엿볼 수 있는 옛 광주적십자병원이 지난 3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사진은 과거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응급실을 둘러보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 /박정석 기자

"1980년 광주시민들의 연대정신을 몸소 느끼고 갑니다."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일까지 2주가 채 남지 않은 지난 5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의 옛 광주적십자병원.

부처님 오신날을 포함한 연휴기간인 이날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이곳에는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과거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1층 응급실과 서남대병원 폐쇄 직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복도 등 병원 곳곳을 유심히 살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업무일지와 깨진 유리창, 병상 위 색이 바랜 하늘색 모포는 방문객들에게 과거에 멈춰있는 병원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병원을 찾은 김동호(45) 씨 가족이 응급실 옆 처치실에서 상영되고 있는 병원 관계자 증언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박정석 기자

당시 병원 수간호사로 근무했던 박미애 씨의 증언이 담긴 영상과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이창성 씨가 촬영한 헌혈자들과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급박했던 병원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됐던 영안실을 비롯한 건물 뒷마당에는 적십자병원의 향후 활용방안을 묻는 참여형 전시 콘텐츠가 마련돼 관람객들과 병원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장도 준비돼 눈길을 끌었다.

1965년에 지어진 해당 건물은 1996년부터 서남대학교병원으로 운영되다 2014년 폐쇄됐으나, 이달 3일부터 11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배경 중 하나로 등장했으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피 흘린 이들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혈 행렬이 이어진 '광주 공동체정신'의 산실이기도 하다.
 
옛 광주적십자병원 1층 복도. /박정석 기자

이에 5·18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물론, 광주와 멀리 떨어진 전국 각지에서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어린이날임에도 어린 자녀를 데리고 역사 공부를 위해 이곳을 찾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도 적지 않았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 거주하는 김동호(45) 씨는 아내와 두 아들 김건우(14)·김주원(12) 군과 함께 이날 병원을 찾았다.

아버지 김 씨는 중앙 현관의 사진 전시를 보며 "작년 계엄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됐을 수도 있다"며 두 아들에게 민주열사들의 희생 가치를 일깨웠다.

그는 "5·18은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라며 "정치인을 비롯한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행동에 옮기는 민주시민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아들 김주원 군은 "그때 희생되신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자유와 민주주의가 억압받았을지 모른다"며 "그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오월영령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병원 뒷마당에 마련된 건물의 향후 활용방안 관련 관객참여형 전시 콘텐츠. /박정석 기자

긴 연휴를 맞아 서울에서 전남 나주로 여행을 온 조영훈(48)·이명주(45·여) 씨 부부도 서울로 돌아가기 전 자녀들과 함께 광주를 방문했다.

2년 전 어린이날에도 광주를 찾았던 조 씨 가족은 당시 전일빌딩245를 둘러보며 느꼈던 깊은 인상과 경험을 떠올리며 재차 광주를 들르게 됐다고 한다.

조영훈 씨는 "놀이시설은 서울을 떠나 전국 어디든 많지만, 책에서만 보던 5·18을 이렇게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은 광주밖에 없다"면서 "광주에 오면 5·18을 포함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정보가 많아 온 가족이 많은 걸 배우고 돌아간다"고 했다.

그의 딸 조유빈(12) 양은 "어린이날에 5·18의 아픈 역사에 대해 들으니 더 슬픈 것 같다. 만일 다음에 5·18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광주시민을 따라 나도 헌혈에 동참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1980년 당시 시민들의 헌혈이 이뤄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 3층 308호. /박정석 기자

한편 옛 광주적십자병원에는 개방 첫날인 3일부터 6일까지 나흘의 연휴기간 동안 총 526명이 다녀갔다.

병원은 오는 31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에 걸쳐 시민들에게 개방되며, 오후 1시 30분 이후에는 5·18기념재단의 '오월 해설사'가 관람객들에게 무료 해설도 제공한다. 다만, 1층 일부와 2·3·4층은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개방되지 않는다.
/박정석 기자 p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