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의 부활 [강석기의 과학풍경]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인류학자였다. 그는 각종 신체 치수를 정량화하는 인체측정학 분야를 개척했고 지문 감식이 범죄자를 밝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체계화했다.
그는 지능에도 관심이 많았고 특히 지능의 유전성을 주목해 1869년 ‘유전적 천재’를 출간했다. 특이한 제목의 이 책에서 골턴은 영국 유명인의 가계를 집요하게 추적해 얻은 데이터에 통계 기법을 적용해 이들의 천재성이 유전적 특성임을 보였다. 예를 들어 유명인의 아들이 유명인이 된 비율이 48%(유전자 50% 전달)이고 손자는 14%(유전자 25%), 증손자는 3%(유전자 12.5%)라는 식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골턴은 급기야 인류 후대의 질 향상을 위해 적격자의 탄생률을 높이고 부적격자는 덜 태어나게 하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우생학(eugenics)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골턴이 뿌린 씨앗은 반세기 뒤 독일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인류 최악의 열매를 맺었지만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폐해가 만만치 않았다.
2021년 한글판이 출간돼 과학책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저명한 어류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로 뒷부분에서 인생 후반기에 우생학에 심취했던 조던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 20세기 전반 미국은 조던 같은 학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열등하다고 판정받은 수많은 사람을 시설에 격리하고 강제로 불임수술까지 시행하는 반인륜적 행위를 자행했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트럼프 재집권 이후 다시 떠오르고 있는 우생학을 걱정하며 유전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기고문이 실렸다. 미국 존스홉킨스보건대 제너비브 보이치크 교수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진행한 유전체학 연구 결과 인종이나 민족 같은 개념의 생물적 기반이 미미하다는 게 드러났음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백인 민족주의와 사이비과학적인 우생학이 다시 유행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우리 나라에는 지금 나쁜 유전자가 많이 있다”는 우생학적 발언을 했던 트럼프는 집권 이후 500만달러(약 70억원)에 미국 영주권을 판매하는 일명 ‘골드 카드’ 비자 구상을 발표했다.
유전체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의료 현장은 인종 기반 의학에서 벗어나고 있다. 환자가 흑인, 백인, 아시아인이냐보다는 개인 고유의 유전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를 ‘부식성 이념’이라며 비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는 지난 2월 청문회에서 흑인 어린이는 백인 어린이와 면역계가 달라 백신 일정을 달리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발언을 했다.
2020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원서)가 나와 화제가 되자 조던이 근무했던 인디애나대와 스탠퍼드대의 학생과 교수, 교직원, 졸업생들은 편지와 시위로 항의했고 이들 대학은 건물에서 조던의 이름을 지웠다(예를 들어 스탠퍼드대의 조던 홀이 빌딩 420으로). 이러다가 이들 건물의 이름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항의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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