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천에서 독립운동가 홍진을 기려야 할 까닭

인천일보 2025. 5. 6. 15: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천일보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 홍진>을 발간했다. 이어 지난 2일 오후 '여행인문학도서관 길 위의 꿈'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잊힌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본보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지역 독립운동가의 일생을 밝히면서 중국 상하이에서 국내 언론 최초로 '대한민국 국호가 탄생한 곳'을 찾아내는 과정을 소개했다.

만오(晩悟) 홍진(洪镇, 1877~1946)은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인천 자유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제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투신했다. 그는 민족유일당 운동을 위해 임시정부 국무령을 사직하고, 만주로 건너가 좌우화합과 통일조직 건설에 매진했다. 홍진은 이청천 장군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한국독립군을 창설해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다. 아울러 독립운동 3대 대첩으로 꼽히는 '대전자령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한 차례 국무령(지금의 대통령)과 세 번의 임시의정원 의장(지금의 국회의장)을 거치기도 했다.

본보는 이런 인물이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몇 년 전 특별취재팀을 꾸려 홍진의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인천의 대표 독립운동가 만오홍진'을 12회 보도했다. 특별취재팀은 추가 취재를 벌여 총 5부 50장(330쪽)의 책을 내놓았다. 만오는 광복 후 국내로 돌아와 '통일 대한민국 건설'을 목표로 비상국민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지만, 환국 1년 만인 1946년 갑자기 서거한다. 본인 뜻에 따라 인천 문학산 선산에 묻혔다가 이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하게 된다.

홍진은 인천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그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활동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당파적이지 않았던 그는 주변에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 국회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국회도서관 중앙홀 가운데에 '만오홍진선생기념 상설 전시관'이 생겨난 과정도 그런 이유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인천의 독립운동가 홍진의 활약을 공유하는 일이 새롭게 나아가는 인천의 미래와 함께하기를 기대한다.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