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 쥐처럼 산다”...무기력 자처하는 중국 Z세대들의 절규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5. 5. 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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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65]
중국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탕핑족을 묘사한 삽화. [출처=바이두]
“무기력하고 은둔적인 모습이 마치 하수도 속에 사는 쥐 같다.”

최근 중국 SNS에서 생소하면서도 기괴한 신조어가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바로 ‘쥐인간’(老鼠人, rat people)입니다.

이 단어는 지난 2월 한 중국 여성이 자신의 일과를 SNS에 영상으로 공유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은둔적이고 무기력한 생활을 하수도에 있는 쥐에 빗댔는데, 이후 유사 영상들이 잇따라 게재됐고 수십억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들을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고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며 사회생활을 피하고 무기력한 삶을 자처하는 청년들”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탕핑족’서 ‘쥐인간’으로...진화하는 中청년층의 무기력 현상
중국의 쥐인간 현상을 챗 GPT가 그래픽 이미지화한 모습.
쥐인간을 자칭한 이 여성이 소개한 자신의 일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1:20 기상→13:20 배달 음식 주문해 아침 겸 점심→14:20 낮잠→17:30 밀크티 주문→18:10 고양이들 밥 준비해 먹이기→18:50 다시 침대로→20:00 배달 음식으로 저녁→20:30 드라마 시청→02:30 취침.

어떤 목표나 방향성도 보이지 않는 하루 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매일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소위 쥐인간 현상은 중국에서 지난 2021년 등장한 ‘탕핑’(躺平·드러눕기)운동의 진화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N포세대’에 해당하는 중국 탕핑족들은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자신들의 좌절감을 집단으로 드러눕는 모습으로 표출했습니다.

중국 청년층 사이 탕핑 운동의 확산은 중국 지도부에까지 우려를 불러일으켰는데, 시진핑 주석이 직접 “탕핑을 경계하라”고 강조하고 나설 정도였습니다.

SCMP는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건 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욕은 갖춘 상태가 탕핑 이라면, 쥐인간은 그것조차 내려놓고 아예 무기력 자체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에 도달한 이들” 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탕핑족이 등장한지 3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쥐인간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중국 청년들의 상황이 개선은 커녕 더 악화됐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2023년 부터 대학 재학생은 실업률 산출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20%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청년 5명중 1명은 실업자란 뜻입니다. 어렵사리 취업하더라도 소위 ‘996’(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이라는 착취적인 노동 강도에 낮은 임금,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게도 큰 타격을 주고 있는데, 경기 둔화와 디플레이션 심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은 아무래도 청년들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침대서 나오지 않는 자녀들...세대 간 격차가 낳은 현상
지난 3월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한 학교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 모습. [AFP=연합뉴스]
쥐인간을 자처하는 중국 청년들은 외제차, 헬스장, 고급 카페에서의 일상을 인증하며 화려함을 과시하는 인플루언서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한 청년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성공은 내겐 의미가 없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최소한의 에너지로 버티며 살겠다. 억지로 활기차게 보일 필요도 목표가 있는 척할 이유도 없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사는 인생은 그만. 내가 편하면 그걸로 족하다.”

체념이라기 보다는 중국사회에서 강요돼온 성공 프레임에 대한 거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모습은 이들 중국 청년들이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매우 다른 시대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부모세대는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른 수혜와 부동산, 제조, 기술산업의 급성장으로 비교적 쉽게 사회적 계층 상승이 가능했고, 상대적으로 저축과 안정된 기반을 갖추기도 쉬웠습니다.

반면 자녀 세대는 부동산 가격 폭등, 정체된 임금, 극심한 경쟁 구조 속에서 노력의 대가를 실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식의 무력감이 만연하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세대 간 격차가 역설적으로 쥐인간과 같은 삶을 가능하게한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중국 디지털 마케팅 기업 디지털 크루의 대표인 오피니아 량은 SCMP에 “중국의 쥐인간 세대는 가정의 경제적 지원 덕분에 잠시 물러날 수 있는 여유를 갖춘 첫번째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즉, 부모 세대의 성공이 자녀 세대가 사회와 거리를 두고 무기력과 은둔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한 구조적 기반이 돼버렸다는 지적 입니다.

청년들이 무기력에 빠진 사회, 그 끝은?
중국 SNS에 올라온 쥐인간에 대한 게시물들. [사진=웨이보 캡처]
물론 이 같은 현상을 단순히 경쟁에서 밀려난 청년들의 회피적 태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중국 허베이성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는 한 여성은 “쥐인간 현상은 좌절 후 나타나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대응 방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사회적 접촉을 줄이고 삶을 단순화하겠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런 삶이 지속가능하지가 않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표면적으로 ‘게으름’처럼 보일 수 있는 이 현상의 이면에 분명히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경고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산하 중국연구소 스티브 창 교수는 “성장이 더 이상 약속되지 않는 사회, 노력의 보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가장 약한 고리들이 집단적으로 보내는 이상 신호” 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사회가 과연 얼마나 더 지속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중국 당국도 청년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현상을 일시적이거나 개인의 나약함으로 가볍게 치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내놓은 경기 부양책에는 일과 삶의 균형 촉진, 청년 고용지원 확대, 직업훈련 프로그램 강화 등의 대책이 포함됐습니다.

하지만 올해 대학 졸업생만 역대 최대인 1222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 입니다.

스티브 창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기술 강국으로 만들기 원하지만, 젊은세대들이 그럴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아직은 쥐인간과 같은 청년들의 수가 많지 않아 큰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이런 흐름이 주류가 된다면 공산당은 매우 큰 골칫거리를 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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