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면 돛으로 가고 바람 멎으면 노를 저었다
고향바다에선 혹한에도 싹이 자랐다
그 초록 물결을 뜯으며 목선들은 초식동물처럼
내 고향바다에 쟁기질을 했다
바람 불면 돛으로 가고
바람 멎으면 노를 저었다
바람의 속성을 알아야 하늘은 새들에게 날개를 부여했듯이
바다의 속내를 헤아리는 자에게 바다는
어부의 자격증을 부여했다
북서풍 15미터, 파고 1.5미터의
바다가 펼치는 고난도의 시험코스에 돛을 세웠다
낮추기, 눕히기, 늦추기, 멈추기, 틀기, 일어서기 그리고 달리기…
바람을 견뎌온 나무가 바람을 다스리듯
파도를 견뎌온 바위가 파도를 다스리듯
들풀도 바람을 다스린다는 해방직후의 고향바다
그때 익힌 지그재그의 항법으로 아버지는
파란만장의 생의 바다를 건너셨다
바느질 흔적이 너무 많으신 아버지의 돛폭!
그 돛폭이 파도를 뚫고, 그 오기가 뭍을 오르면서
칠전팔기 아버지 항법을 흉내내던
내 살갗의 육십오 퍼센트가 바느질투성이다.
/ 2016년 고정국 詩
#시작노트
바람 불면 돛으로 가고 바람 멎으면 노를 저으시는 파란만장한 생을 헤쳐오신 이 땅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자유시 형태의 작품입니다.
이제 당시 아버지 연세를 넘어선 나이의 나의 살갗은 육십 오 프로 삼도화상으로 칠전팔기의 아버지 생애의 돛폭의 바느질 흔적과 같습니다. 이곳저곳 꿰맨 아버지 돛폭의 바느질 자국은 결코 '패배의 상징'이 아닌 '극복의 상징'이었듯이, 그때 화상에 오그라든 손가락을 쓰다듬으면서 오늘 '시 쓰기의 항로'를 저어가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강한 비바람과 거친 파도는 가장 유능한 항해사의 편이다."라는 『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의 말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