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긴 호흡으로 작동… 편법·눈속임 통하지 않는다

한겨레 2025. 5.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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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span>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미술관이 아니어서 구입하지 못한 서도호의 2005년작 ‘게이트’(Gate). 이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컬렉션이 됐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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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이나 지인의 전시회가 아닌, 자발적으로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처음 산 것이 2000년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부터 거의 모든 자산가격이 순차적으로 상승했다. 먼저 집값이 올랐고, 이어서 오일 가격이 치솟으며 광물과 농산물 등 상품지수 전반이 움직였다. 주식시장도 상승해 2007년에는 코스피지수가 최초로 2천 포인트를 찍었다.

자산가격의 순환적인 상승 랠리를 지켜보면서 미술품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자산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본격적인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했다. 금융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탓에 자산가격의 변화에 민감하기도 했지만, 한 치의 오차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금융업계의 관행에 익숙했던 내게 미술시장은 편법과 뻔한 눈속임이 난무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아마 그들에게도 나 같은 고객은 낯선 신세계였을 듯하다.

2000년 이후 선진국 시장 상승세

당시 한국의 미술시장은 박수근, 천경자 등 근대 시기 화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고,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은 갤러리 전시에서나 접할 수 있었다. 2000년 이후 선진국 미술품시장은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견조한 상승세를 지속했다. 장샤오강을 비롯한 중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2004년 말 소더비 경매에서 억대에 낙찰되면서 중국 동시대 미술품 가격이 단기간에 수직 상승했다. 이처럼 중국 미술시장이 급성장하자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의 메이저 경매회사는 한국과 일본의 동시대 미술시장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동시대 미술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들의 안목으로 대중성 있는 작가들을 찾아가 신작을 경매시장에 출품하는 편법으로 동시대 미술의 유통시장을 조성했다. 말하자면 미술계에서 평론가나 기획자의 발탁으로 미술관 전시를 하며 성장한 검증된 작가가 아닌 대중적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시켜 만든 작가들의 시장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경매회사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 작품이 억대에 팔리면서 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중국 미술의 상승세가 한국과 일본 미술로 확산될 거라 믿고 한국 동시대 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발 빠른 서구 컬렉터들이 생겨났다.

한국 근대 작가에서 중국 작가와 동시대 한국, 일본, 서구 작가로 관심의 폭이 넓어지면서 국내뿐 아니라 국외 갤러리와 아트페어까지 열심히 쫓아다녔고 자연스럽게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중 일찍이 중국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 수익을 남긴 뒤 한국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사던 60살가량의 네덜란드 여성 컬렉터를 우연히 사귀게 됐다. 처음 만났을 때 미술시장이 저평가돼 있어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내 소개를 하자, 그 컬렉터는 자신은 그저 작품이 좋아 모으는 것이지 계산은 하지 않는다면서 나를 계산만 하는 ‘미스터 노트북’이라고 놀렸다.

한번은 국외 아트페어의 서도호 전속갤러리에서 그의 대표적 작품을 구입하겠다고 했는데, 미술관이 아니면 팔지 않는다고 거절당한 적이 있어서 ‘미술관을 한다’고 할걸 싶었던 적이 있다. 또 세계적 유명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에 심취해 그의 메이저 작품을 구하려고 독일 베를린의 전속갤러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틀가량 기다리라더니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판매하지 않겠다’며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다. 아마도 좁은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평가돼 있어 컬렉션한다’고 말하고 다닌 게 화근이었던 듯하다.

네덜란드 컬렉터는 게티미술관의 설립자인 진 폴 게티에 대해 이야기해주곤 했는데, 워낙 구두쇠로 유명한 게티가 생전에 미술품 가격을 엄청 깎았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게티는 거래를 주선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꼭 5%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본인도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한국 갤러리에 중국 작가 쩡판즈의 작품 구매를 알선하면서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겼다. 아마 급조된 한국 동시대 미술시장에 손을 댔다가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이었는지 모른다.

일본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당시에 이우환, 이불 등의 한국 작가도 전속하던,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갤러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뜸 중국 미술에 견줘, 심지어 한국보다 일본 미술이 더 저평가된 것 같아 일본의 동시대 미술을 배우고 컬렉션을 해보고 싶다고 대표에게 찾아온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꽤 어이가 없었을 텐데 당시 그 대표는 내게 일본 현대미술사를 한 시간 이상 강의해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거꾸로 한국 작가를 소개해주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컬렉터는 저평가 작품 골라 사야

그런데 한번은 한국에서 한 사업가가 와서 미술관을 설립할 거라면서 개인 자격으로는 구하기 힘든 유명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물어온 적이 있다. 수소문해보니 그정도 규모의 회사가 아니어서 앞으로 사업이 번창하면 나중에는 미술관을 설립할 수도 있겠다고 우회적으로 답변해줬다. 아니나 다를까, 한두 해 지나 그 사업가가 작품을 구입하자마자 바로 차액을 남겨 되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사업이 번창하기는커녕 단기에 어려워졌던 모양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편법으로 급조된 작가는 모두 잊히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던 이들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있는데 그걸 살 여유는 언제나 부족해 컬렉터는 아무리 좋더라도 저평가된 작품을 골라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저평가된 작품을 산다고 말한다. 그런데 좋은 작가가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쳐 만들어지듯, 시간은 컬렉터의 평판도 만들어낸다. 미술시장은 잠깐 보면 편법과 눈속임이 통할 듯 보이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금융시장 못지않게 정확하게 작동한다.

이승현 미술사학자 shl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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