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을 구출할 수 있을까?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5. 5. 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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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제공

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야동’에 심각하게 노출된 아이가 있었다. 처음 시작된 시기는 초등 저학년.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형 어깨너머로 보다가 형이 학원 때문에 바빠지면서 혼자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학교에 와서 친구들을 끌어안고 신음을 내거나, 수행평가 시험지에, 가림판에 세밀화로 개들의 짝짓기 장면을 묘사하기 시작하며 외부에 드러났다. 그리고 특정 아이에 대한 성적인 표현과 놀림이 심각한 수위였다. 아이들의 신고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증거를 수집한 뒤 학부모에게 알렸다. 학부모는 아이가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 그런 걸 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각종 증거와 증언들을 제시한 뒤 나는 제일 중요한 건 아이이고, 어린 나이부터 그런 영상에 노출되어 황폐해졌을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잘못된 여성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아이는 상담을 열심히 받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가 야동을 보고 흉내 내고 친구를 놀리는 일이 뭔가 복잡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자신을 걱정해준 어른이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소년의 위기’가 화두인 시대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지난 3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소년의 시간’이라는 영국 드라마가 4주간 글로벌 1위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넘어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라든지, ‘그러면서 크는 거지’ 같은 반응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른바 ‘소년의 위기’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 각종 영상매체의 급속한 발달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소년의 위기에서, 내적 원인은 한가지만을 짚을 수 없다. 학교에서 만나본 아이들 중 위기 단계까지 간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원인을 갖고 있었다. 공부 잘하는 형제와 비교당하고 과도한 선행학습에 지친 아이, 아버지의 죽음과 경제적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아이, 아이들 사이에 공고해진 계급과 그것으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 바쁜 부모님으로 인해 방치된 아이 등 그 원인은 매우 달랐다. 그러나 표출 방식은 비슷했다. 만만하고, 공격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약한 아이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그 대상이 동성일 때도 있지만, 이성일 때는 여성혐오로까지 번졌다. 아동·청소년기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뒤돌아볼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의 원인이나 본질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끌어안거나 넘어서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시도도 하기 전, 혹은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전에 너무 쉽게 타인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낸다.

위기의 소년을 만나는 해마다 나는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이라는 책을 펼쳐 든다. 집단에 인정받고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하려는 아이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을 찾는다. 사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같은 또래집단의 ‘방관자’들이 집단의 역동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행위에 가담한 데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갖도록 하고, 어른들에게 터놓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아이들에게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는 2003년에 쓰인 이 책을 펴 들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건 아이들 한명 한명을 계정 수로 보고, 조회수 1과 좋아요 1을 올려줄 고객으로만 보는 플랫폼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공감의 가상 공동체에서 그 소년을 구출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초연결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학교가 아이들에게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책 내용은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마이클 톰슨, 캐서린 오닐 그레이스, 로렌스 제이 코헨 지음, 양철북 펴냄)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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