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의 꿈, 민주 시민의 꿈 [뉴스룸에서]

서정민 기자 2025. 5.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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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문어의 꿈’ 싱글 표지. 워너뮤직 제공

서정민 | 문화스포츠부장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모던록 밴드 델리스파이스가 1997년 발표한 데뷔곡 ‘챠우챠우’의 노랫말은 이게 전부다. 단순하면서도 은근한 중독을 부르는 기타 전주로 시작해서는 같은 노랫말만 반복하다 끝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애달픈 사랑 노래나 이별 노래로 받아들이곤 한다. 배우 이나영이 청각장애인으로 출연해 배우 조승우와 얽히는 멜로 영화 ‘후 아 유’(2002)에 쓰여 더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노래의 해석은 듣는 이의 몫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태어난 데는 반전의 사연이 있다.

델리스파이스는 피시(PC)통신 하이텔의 ‘메탈동’(헤비메탈 동호회) 아래 분과 ‘모소모’(모던록 소모임)에서 만난 이들이 1995년 결성했다. 연주 실력은 대단치 않았지만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장르 모던록에 대한 애정이 컸다. 이들은 당시 막 태동한 ‘홍대 앞 인디신’ 라이브클럽 무대에 섰다. 이들의 음악을 접한 어느 평론가는 실력이 형편없다고 혹평했다. 밴드의 리더 김민규(기타·보컬)는 괴로웠다. 혹평이 귓가에 자꾸 맴돌았다. 그는 이를 노래로 만들고 개 품종의 하나인 ‘챠우챠우’를 제목으로 붙였다. 데뷔 앨범 ‘델리스파이스’에 수록된 이 노래는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한국 모던록을 개척한 명곡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여러 플레이리스트에 오른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요인을 창작의 동력 삼아 카운터펀치를 날린 것이다.

어린이날 특히 많이 울려 퍼지는 ‘문어의 꿈’도 알고 보면 마냥 밝은 노래만은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 시즌5 준우승자 출신 안예은이 2020년 발표한 3집 ‘ㅇㅇㅇ’ 수록곡으로, 동요 같은 멜로디와 노랫말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케이팝 스타’ 출연 당시부터 자작곡을 선보여온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은 문어가 잠잘 때 꿈속 배경에 따라 몸의 보호색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서 접하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잠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 장미 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야” 하는 대목까지만 해도 천진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후 반전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당시 안예은은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꼈던 듯하다. 자유로움을 꿈꿨으나 답답한 현실의 벽에 갇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문어의 꿈’과 같은 노래를 통해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문어의 꿈’은 앨범 타이틀곡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그의 대표곡이 됐고, 이후 음악적으로 도약하는 발판도 됐다. 그 자신뿐만이 아니다. 음원 플랫폼 지니에는 “요즘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회사 생각을 하면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 노래를 들으면 조금은 가라앉는다”며 “이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고 예은씨도 힘내면 좋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동화처럼 따뜻한 결말이다.

지난해 12월3일 불법 계엄 선포로 촉발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다섯달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인 대통령이 지난 4월4일 파면되면서 잦아드는가 싶더니만, 한달 새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또다시 잇따르면서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고 있다. 내란 사태에 책임이 있는 국무총리가 직을 던지고 대통령 선거에 뛰어드는가 하면, 대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비정상적인 속도전 판결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 그야말로 행정부·사법부의 총체적 난국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생중계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낭독한 주문,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광주 5·18민주묘지에 참배하려다 시민들에게 가로막히자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외친 목소리는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자꾸 맴돌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6월3일 유권자들의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이길 순 없다. ‘민주 시민의 꿈’은 끝내 이뤄질 것이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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