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푸코가 ‘숏폼 세상’을 본다면
정신과 의사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철학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1위를 차지할 것이다. 푸코는 정신 질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사회가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정신병자로 낙인찍고, 격리와 치료라는 이름으로 통제해 권력을 더욱 강화한다고 말한다. 권력관계에 천착해 사회를 바라보는 이 철학자의 일관된 결론이다.
그러나 푸코의 논리는 현대 뇌과학의 발달로 힘을 잃었다. 정신 질환 상당수는 실제로 뇌의 구조적 혹은 기능적 문제 때문에 발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동이 많이 겪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살펴보자. ADHD 환자는 실제로 뇌의 ‘기저핵’ 부위가 덜 발달해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억제하는 기능이 떨어진다. 조현병은 어떨까.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잇는 연결망에 오류가 생긴 것이 현재 밝혀진 가장 유력한 원인이다. 권력이 자의적으로 누군가를 강제 입원시킨 사례가 없진 않겠으나, 정신 질환을 뇌의 생리적 원인과 별개로 논의하긴 곤란하다.
정신 질환은 개인 의지의 문제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외부 치료가 개입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도 점차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안타까운 건 최근 정신 질환 약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정신과에서 ADHD 치료제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환자 수가 급증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약’으로 와전돼 발생한 현상이 아니다.
소셜 네트워크와 각종 숏폼 콘텐츠가 환자 급증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디지털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수면 시간이 줄고 충동 조절에 악영향을 미쳐 우울감을 높인다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푸코가 지금 상황을 목격했다면, 초대형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을 새로운 권력으로 정의했을 개연성이 크다.
디지털 미디어는 끊임없는 자극과 즉각적인 보상으로 특정 행동 양식을 길러내는 동시에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을 낙오자로 분류한다. 이에 과적응한 청소년들은 정신 질환을 얻고, 낙오된 노인들은 멸시의 대상이 된다. 정상성의 범주를 규정해 권력을 강화한다는 푸코의 통찰을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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