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80] 미켈란젤로의 원형 그림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 5. 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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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도니 톤도, 1507년경, 목판에 유채와 템페라, 직경 120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도니 톤도’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가 목판에 그린 그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완성작이다. 피렌체의 모직물 상인 아뇰로 도니가 주문한 ‘톤도’다. 톤도는 ‘둥근’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로톤도(rotondo)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원형 예술 작품을 지칭한다. 이 작품이 ‘도니 톤도’라고 불리는 건 도니가 주문한 원형 그림이기 때문이다.

1504년 도니는 피렌체의 유서 깊은 귀족 스트로치가(家)의 여인과 결혼했다. 도니 집안 또한 부유했다. 그러나 스트로치가의 정치력과 문화적 수준에 비교하면 여러모로 기우는 신흥 부자에 불과했다. 첫아이를 낳았을 무렵 미켈란젤로에게 성가족(聖家族)을 주제로 한 ‘도니 톤도’를 주문한 것은 도니의 사회적 지위와 예술적 취향이 여느 귀족 못지않음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성가족이란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다. 그림 속에서 요셉은 마치 권좌처럼 굳건하게 마리아의 등을 받치고 앉아서 풀밭에서 책을 읽던 그녀에게 조심스레 아기 예수를 안아 건넨다.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사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니, 요셉은 그저 마리아의 남편일 뿐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였고, 아기 예수를 헤롯왕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을 감행했다. 이처럼 요셉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들었을 헌신과 신앙을 실천했지만, 복음서를 아무리 살펴도 뭐라 길게 말을 한 적이 없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도니 톤도’를 다시 보니 낳은 아버지가 아닌, ‘선택된 아버지’로서 묵묵히 역할을 다했던 요셉이 유난히 크게 보인다. 어쩌면 도니는 요셉처럼 혈통과 권위가 아닌 책임과 헌신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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