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80] 패권 경쟁 시대엔 ‘과학 외교’를

1950~1980년대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모두 10만기가 넘는 핵무기를 만들어 비축했다. 무기 비축이 정점에 이르렀던 순간에는 두 나라 합쳐 7만기의 핵폭탄을 보유한 시기도 있었다. 당시 전면적인 핵전쟁이 발발했다면 양국뿐 아니라 인류 문명이 종말을 고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핵전쟁으로 발생해 성층권까지 올라간 미세한 연기가 태양 빛을 막아서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현상인 핵겨울을 낳기 때문이었다. 핵겨울이 지속되면 식물, 동물, 인간 순으로 멸종할 운명이었다.
이렇게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도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들은 국제 협력을 이어갔다. 1957~1958년 ‘국제 지구물리학의 해’를 맞아 미국과 소련의 지구과학자들은 지구의 기상, 지진, 해양을 연구하는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75년에는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과 소련의 소유즈 우주선이 도킹해서 우주 공동 실험을 수행했다. 이후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한 협력으로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미·소의 의사와 공중보건 연구자들도 협력했고, 그 결과 1980년에 천연두 박멸을 선언할 수 있었다. 냉전 시기에 적국 과학자들 사이의 협력은 서서히 외교적인 소통의 채널을 트는 효과까지 낳았다. 이때 ‘과학 외교(science diplomacy)’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요즘 ‘패권’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미·중의 경쟁을 놓고 ‘과학기술 패권’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된다. 사전적인 의미로 패권이란 지배 집단이 다른 집단에 행사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술은 차치하더라도, 과학은 패권의 도구일 수도 없고 패권 경쟁의 결과일 수도 없다. 과학은 다른 나라를 이기고 누르겠다는 욕심에서 발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의 정신은 편 가르기가 아닌 협력이며, 포용과 다양성이다. 토론과 탐구를 강조하는 과학의 방법은 독재나 패권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와 상통한다. 과학은 살벌한 전쟁이 아니라 즐거운 소통을 지지한다. 패권이 유행하는 지금, 과학을 통한 신중한 외교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학 외교’의 지혜를 복원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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