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창의적 질문이 자라는 봄을 소망한다
마음속 간직한 생각 꺼내게 할 경청 중요
“함께 모여 강독할 때면 집현전 학사들이 평소와 달리 질문을 많이 한다.”

따라서 실록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읽으며 각자의 관점을 나눌 때, 그 중층적 구조를 드러낸다. 서로 다른 시선이 만나야 그 비밀의 문을 연다. 그 점에서 《세종실록》은 토론을 위한 최고의 텍스트다. 내용만이 아니라, 세종의 말투 역시 실록을 생동감 있게 만든 요소이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자주 “경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실록에 자주 등장하는 ‘하여(何如)’라는 의문형 어투는 신하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학습하고 현장을 확인하도록 이끄는 장치였다.
예컨대 1432년 설날, 세종은 신하들과 소복 차림으로 근정전 섬돌에 섰다. 정오에 일식이 있을 거란 예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종은 구식(救蝕) 의례를 멈추게 하고, 북경에서 막 돌아온 통역관에게 “중국에서도 설날에 일식이 예정되어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통역관은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중국에서 만든 역법 책대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두 나라의 경도(經度) 차이 때문임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해 7월 1일, 조선은 자격루의 시보 체계를 바탕으로 표준시간을 제정해 공포했다. 같은 해 10월, 세종은 그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정밀한 노력을 더하여 책을 만들라. 후세로 하여금 전에 없던 일을, 오늘 우리가 이루었음을 알게 하자.” 이는 당시 최고로 여겨졌던 중국의 수시력을 넘어 조선의 독자적 역법 체계 ‘본국력(本國曆)’을 향한 강한 의지의 천명이었다.
그즈음 경회루 근처에 여러 과학기기가 설치됐다. 역법의 이론과 실제 사이에 차이가 없는지를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이슬람의 회회력까지 비교 검토한 끝에 드디어 1442년 ‘칠정산 내·외편’이 완성됐다. 그리고 두 해 뒤 세종은 1444년 ‘갑자년’을 새 역법의 기원으로 선포했다. 그해를 ‘갑자년 역원(曆元)’ 즉 우리 역(曆)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432년 설날에 세종이 던진 질문의 의미는 깊고도 크다. 일식 시간이 맞지 않으면 서운관 관원의 실책으로 여겨 유배 보내던 시절에 세종은 관점을 달리해 질문을 던졌다. ‘그토록 정밀하게 계산했는데도 시각이 계속 어긋나는 건 혹시 중국에서 들여온 역법이 우리나라 시간과 맞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 질문은 단순한 오류 지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맞는 시간 체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바로 그 물음에서 ‘칠정산 내편’이 나왔고 ‘조선의 시간’이 탄생됐다.
어떻게 해야 세종처럼 질문을 잘할 수 있을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음을 제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세종실록’이 주는 하나의 열쇠는 ‘잘 듣는 태도’, 즉 귀 밝을 총(聰)이다. 세종은 자주 의문형 어투로 말문을 열었고 신하들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간직한 생각을 꺼내게 했다. 그들이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실행했다. 세종의 이런 대화 민감성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스며들기를, 그리하여 창의적인 질문이 자라나는 봄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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