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이어 ‘사법 내란’…음모론 치부 말아야 [왜냐면]

한겨레 2025. 5. 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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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법비에게 철퇴를! 조희대 대법원 박살내자’ 138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이 촛불행동 주최로 열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데이비드 최(필명) | 자유기고가

지난해 12월3일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사실 우리는 믿지 않았다. 설마설마했었다. 계엄의 가능성은 훨씬 전부터 경고됐었다. 하지만 우리는 웃어넘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국회에서, 훗날 체포 대상이 되는 의원들 앞에서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고 소리치는 내란세력의 항변에 동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의 비상계엄은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됐고,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45년 만에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지난달 4일 파면됐다. 2017년 3월10일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이 파면된 지 불과 8년 만이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경고가 있다. 역시 지극히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오는 시나리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지난 1일 대법원의 유죄 취지 환송 판결이 있었고, 그이튿날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재판부 배당, 첫 공판기일 지정, 피고인에 대한 소환장 발송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의 환송 판결은 3월26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 이후 37일 만으로, 공직선거법 관련 재판에 적용되는 ‘6·3·3 원칙’의 3개월, 신속한 판단을 강조해온 현 대법원장 취임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선고 3건의 평균 처리 기간인 109일에 비춰볼 때 이례적으로 빠르다.

극히 이례적인 신속 처리에 대하여,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의 취지에 따라 신속하고 집약적으로 깊이 있는 집중심리를 하여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적시 처리를 도모하였음”이라며 역시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정치권 일부에선 파기환송 결정과 후속 절차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선고 이후에도 재상고 기한 7일, 재상고이유서 제출 기한 20일 등 최소 27일의 시일이 확보되므로, 대선일인 다음달 3일 전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전 국민에게 미칠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전례 없이 서두르고 있는 대법원이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파기자판을 하지 않고 굳이 파기환송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에 개입한다는 국민적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가능한 절차를 모두 밟으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으나, 앞서 언급한 극히 이례적인 신속 처리, 사건이 배당된 지난달 22일 당일 전원합의체 회부 직권 결정 등의 과정에서 드러난 조급함에서, ‘사법부의 정치 개입’이라는 비판은 전혀 의식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은 이미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례에 이례가 반복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의 배경은 무엇일까.

형사소송법은 제380조에서 상고 이유의 주장이 제383조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함이 명백한 때에는 결정으로 상고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83조는 원심판결 관련 절차적 위법이나 그 효력이 무효화 되는 결정들을 상고 이유로 제시하고 있으며, 제384조는 직권심판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만약 상고심법원이 이례적으로 매우 구체적인 판단을 하여 가이드라인을 그려주고 원심법원이 그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상고 이유는 원천적으로 이유 없는 것이 되고, 그 판단은 직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상고심법원의 판단은 원심법원은 물론 상고심법원 스스로도 기속한다(대법원 2019다2049 판결 등) △파기환송심 결과에 대한 재상고 시 재상고심법원, 즉 대법원은 기존 환송 판결을 통해 기판력과 확정력이 발생한 사안에 대해 상고 이유를 배척할 수 있다(대법원 2018도7575 판결 등) △대법원은 그 근거가 되는 법리와 사실관계가 명확할 경우 상고 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대법원 2008두6554 판결 등) 등 관련 판례를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적용하여 살펴보면, 대법원의 환송 판결은 대법원 스스로를 기속하므로,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결과에 대한 재상고 시 상고 이유는 배척될 수 있고, 그 배척의 방식은 상고이유서의 제출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직권 판단이 될 수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상고이유서 제출과 관련된 위헌심판 청구에 대해 상고심의 심판범위에 관한 사항일 뿐이라는 이유로 각하하였다(2017헌마221). 즉 대법원의 조급함과 단호함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헌법재판소는 이미 해당 사안이 위헌심판 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선택한 이유는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 이후에 이재명 후보의 유죄를 확정 짓고, 그에 따라 피선거권을 박탈함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대선에 아예 후보를 낼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오직 이 시나리오 안에서만 대법원의 조급함과 단호함, 그리고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움의 공존이 온전히 설명된다.

일각에서는 서울고등법원이 오는 15일 첫 공판에서 변론을 종결한 후 즉시 무죄를 선고하고 당일 즉시 검사가 상고하면, 대법원이 곧바로 파기자판으로 이재명 후보의 유죄를 확정 짓고 법정구속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제기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2심부터는 서류심리만으로도 판결이 가능하고 변론 종결 즉시 선고해야 하며 파기환송심 판단이 무죄일 경우 피고인은 상고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위헌이자 불법인 계엄의 엄단과 내란의 완전 종식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이룩할 기회는 눈앞에 왔다. 하지만 아직 손에 쥔 것은 아니다.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비록 안일하였으나, 온몸으로 국회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한 시민들 덕분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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