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만 집착 말고 ‘AI 의료’에 대비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5. 5. 5. 17:4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2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석한 사직 전공의, 의대생, 의사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현철 | 연세대 의대 교수·홍콩과기대 경제학과 교수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다. 국민과 환자를 위해, 우리는 이 갈등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러나 공공의대 신설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사태가 다음 정권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처음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시작될 때, 고령화에 대응하고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생각한 증원은 500~1000명 선이었다. 정부가 내세운 2000명 증원안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급격한 변화는 언제나 부작용을 동반한다. 교육이 부실해지고, 의사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어 극한 대결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더라도, 교육과 수련을 거쳐 의료 현장에 투입하기까지는 15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세상은, 의료는 결코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인공지능(AI)은 이미 전공의를 넘어섰고, 가장 숙련된 전문의를 향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진단, 영상 판독, 시술 보조는 물론, 환자 관리와 상담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의료 현장을 재편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인공지능은 엑스레이 판독이나 예약 관리처럼 제한적 기능만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방사선 진단 인공지능, 병리 분석 인공지능, 보험 승인 인공지능, 수술 일정 관리 인공지능 등이 서로 자연어로 소통하며, 환자 진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방사선 전문 인공지능이 이상 소견을 발견하면, 병리 인공지능이 검사를 요청하고, 보험 인공지능이 승인을 진행하며, 수술 스케줄러 인공지능이 일정을 잡는 식이다.

이러한 다중 인공지능 시스템이 보편화하면, 기존에 사람이 일일이 수행하던 진단, 검사 요청, 행정 관리 업무가 상당 부분 자동화할 것이다. 의사 한명이 관리할 수 있는 환자 수가 많이 늘어나고, 병원의 운영 효율성도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는 현재 예상하는 것만큼 많은 수의 의사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작정 정원을 늘리는 정책은 보다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민주당이 제안한 공공의대 설립 구상은 그 취지는 공공선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으나, 현실적 실행 가능성 면에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의료 취약지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향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사명감 높은 학생을 선발해 의료 취약지에 의무 복무시키겠다는 방식은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다.

특별한 봉사정신으로 무장한 10대 고등학생도, 시간이 지나 가족을 꾸리고 삶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면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려는 평범한 생활인이 된다. 억지로 원하는 곳에 묶인 의사가 그곳에 오래 남을 가능성은 작고, 열심히 일할 유인도 충분치 않다. 결국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면 많은 이들이 도시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런던정경대 나바 아슈라프와 스콧 리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잠비아에서 진행한 이 연구는, 사회봉사 정신을 강조해 선발한 인력보다, 자기 커리어 성취를 중시한 인력이 환자를 더 성실히 돌보고, 더 뛰어난 성과를 보였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의료 취약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강제가 아니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금전적 보상 확대, 근무환경 개선, 지역사회에서의 사회적 존경 제공 등을 통해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 접근이 더 나은 방식이다.

또한 모든 동네에 모든 의료 서비스를 두겠다는 건, 인구 감소 시대에 더더욱 현실적이지 않다.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이송 체계를 정비하고, 병원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양질의 진료를 제공해야 한다. 산부인과가 시·군·구마다 꼭 있어야 한다는 고집은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대형화가 필요하며, 시도 단위 거점 병원을 구축하고 이동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앞으로 정치적 에너지는 의대 정원 확대에 쏟을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인공지능 의료 시대에 대비해 인공지능 의료 행위의 법적·윤리적 지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의사 협회도, 정치권도, 이제 이 논의에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원점 복귀를 선언했다. 이제 학생들은 들어와야 한다. 남은 과제는 선배들이 씨름하면 된다. 학생들은 더 이상 불필요하게 유급을 당하거나, 아까운 청춘을 갈등 속에서 낭비할 필요가 없다. 국민을 위해서, 환자를 위해서, 이 나라 의료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제는 다시 일상을 회복해야 할 때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