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음 가라앉히고 사회 살펴야… 불행하지 않다면, 지금 행복한 것”
산문집 ‘꽃비 오니 봄날이다’ 출간
“지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사소한 꽃이 없듯이 우리를 스쳐가는 작은 인연들도 결코 사소한 것이 없다. 세상의 큰일들도 알고 보면 사소한 말다툼이나 별것 아닌 감정싸움에서 시작된 경우가 허다하다. 사소함의 가치를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산문집 ‘꽃비 오니 봄날이다’에서)
삼척 두타산 자락 천은사는 고요한 숲의 풍경이 마음에 머무는 사찰이다. 이승휴가 우리나라 3대 역사서로 꼽히는 ‘제왕운기’를 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부처님 오신 날(5일)을 앞두고 천은사를 방문, 손님 맞이 준비에 분주한 천은사 주지 동은스님을 만났다. 본지 도민시론 필자이기도 한 동은스님은 감성칼럼으로 많은 독자들의 인기를 얻는 ‘글쟁이’이기도 하다. 월간 해인 편집장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한 그가 최근 산문집 ‘꽃비 오니 봄날이다’를 펴냈다. 지금 어떤 세상인지, 몇가지 질문을 던지자 스님의 ‘행복론’이 90분간 이어졌다. 춘천에서 삼척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지만, 사찰에서 나오는 길은 한결 가벼웠다. 출판기념회는 25일 오전 11시 천은사 극락보전에서 열린다고 한다.
-산문집을 내셨다. 글을 쓰는 것이 수행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조계종 교육부장을 했던 진광스님(홍천 출신)과 ‘사소함을 보다’라는 주제로 신문에 연재한 글을 엮어서 펴낸 책 ‘사소한 것은 없다’에 미처 못 실은 글을 여기에 수록했다. 진광스님은 저하고는 정 반대다. 그분은 아주 쾌활하시고 여행을 좋아하신다. 나는 감성적인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수행은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라 습관이고 연습이다. 꾸준한 습관을 만든다는 점에서 글쓰기도 비슷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들을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는 일이다. 단번에 되는 일이라기 보다는 물이 한방울씩 떨어져 큰 그릇을 채우는 일과 같다. 예를 들어 찻잔을 주제로 쓴다면 찻잔이 만들어지게 된 인연을 생각하고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무조건 참선만 했지만 명상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사람의 고뇌가 그만큼 많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 결국에는 부처님 가르침으로 통섭이 된다.”

-출가 계기는.
“출가한지 올해 40년 됐다. 출가 전에는 교회를 다녔다. 오로지 공부하고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래야만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른 나이에 혈액암에 걸렸다. 인생에 큰 장애물이 생기면서 궤도에서 이탈해 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신의 섭리라고 하고, 누군가는 업보라고 하더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가혹한 벌을 내리시는지 운명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당사자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남들이 가던 길에서 빠져 나오니 방황을 하기도 하고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법정스님 밑에서 출가하고 싶었는데, 제자를 안받는다고 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오대산 월정사로 갔다.”
-천은사 자랑을 좀 해주신다면.
“사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니라서 조용함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그런 점이 명상하는 분들이나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가끔씩은 하루 종일 사람 한 두명 다녀갈 정도로 조용하다. 혼자 누각에 앉아 풍경소리 듣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사찰마다 다양성이 있지 않겠는가. 또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면 이곳에서 이승휴 선생 추모 다례재를 올린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제왕운기가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서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중요성을 남다르게 생각한다.”
-계엄 이후 현재 대선국면까지, 세상이 너무 날카롭게 느껴진다.
“내 생각과 다르면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갈등 비용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너무 물질문명에 익숙해지고, 정신적 가치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상실감도 보인다. 극단으로 갈라진 상황에서는 중재자가 필요한데 국가간 외교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사회는 중재자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중재를 해도 안 듣는 것이 문제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자기편향적 사고를 고착화 시킬까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대선 국면을 가운데서 보면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둑판도 당사자가 아니라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보이는 법이다. 양동이 흙탕물도 가라앉혀야 하듯,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천천히 보는 방법이 필요하다. 지금은 힘들지만 대한민국에도 정말 봄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멈추고 싶어도 속도가 너무 빠른 고속도로에 와 있는 것 같다.
“관성이랄까, 궤도에서 멈추면 탈락이다. 차를 높은 속도로 몰고 가면 위험하지 않은가. 몸이 차이고, 정신이 운전자인데, 운전자가 문제인 세상이 됐다. 서행을 하면 그나마 차만 좀 부서지고 크게 다치치 않는다. 여기서 멈춰버릴 수는 없지만 너무 과속할 필요는 없다. 휴게소도 들르고, 국도로도 가보자. 자신의 한계치와 타인의 탁월함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몫이 있는 것이다. 기도는 좋은 영향을 주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내 능력을 알아차리고, 노력한 결과를 받아들였으면 한다. 기복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방편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서는 안된다. 기도는 땀을려 일한 뒤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것이다. ”
-행복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
“지금 당장 살기 힘든데, ‘편한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이럴 수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 행복을 생각했으면 한다. 행복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핵심은 지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불평 불만이 사라진다. 지금 당장 벽에 막혀있다면, 다양한 길이 있으니 조금 돌아가는 것도 권한다. 스스로 불행해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이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서로를 인정하기 힘들 때, 예를 들어 흉악범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가.
“난감한 질문이다. 타인을 인정해야 하지만 당사자가 되면 망설이게 된다. 30년간 키웠던 진돗개 ‘보리’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 백내장이 들었는데, 내가 맹견안내인이 된 셈이다. 어느날 이웃 도둑고양이가 계속 밥을 훔쳐먹더라. 보리는 본능적으로 밥을 지키려 했지만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짖어댔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보리 입장에서는 억울한데, 고양이 입장에서는 밥을 훔쳐먹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눈 먼 보리인가 도둑고양인가,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얘기다. 인도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당당하다. 배고픈 자신에게 적선을 하면 공덕을 짓는 것이니 오히려 자기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까는 흉악범의 비유를 들었지만 대한민국이 이념적으로 너무 갈라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 성별, 지역 등 온갖 이념으로 인해 엉뚱한데 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어쩌면 대한민국이 성숙해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봄이 와도 꽃이 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동은스님은 지난 2021년 칼럼집 ‘눈먼 보리와 도둑고양이’를 출간, 6쇄 이상 책을 발간했다.)

-불행하지 않다면, 꼭 행복에 집착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맞다. 행복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저 멀리에서 가져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 일이 없는 것이 행복이고, 온 일상에 깔려있다. 숨을 쉬고 일상을 우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빨리 깨달을수록 행복해진다. 죽을 때까지 일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파도를 타는 방법을 배우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뭣고’만 화두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화두가 될 수 있다. 절에서 밥을 하시는 공양주 보살님은 매일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라고 말하신다. 그분이 그러시면 내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다. 매 순간 행복했으면 한다. 지금 행복하시라.”
행복전도사(?) 스님과의 대화가 끝나고, 사찰을 나오면서 숲에 가득한 신록의 향기가 코 끝 깊이 배어들었다. 세상의 바쁜 소식으로부터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금은 보리 대신 사찰을 지키는 ‘도솔이’를 쓰다듬는 스님이 바로 봄날이었다. 스님이 주신 명함 뒤쪽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행복한 사람은 이미 있는 것을 사랑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나중 행복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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