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베드신 조율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아시나요

김은형 기자 2025. 5. 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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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첫 포럼 열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참여해 촬영을 마친 단편 영화 ‘갈비뼈’.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영화 현장에서 노출 및 베드신 촬영 때 배우와 제작진 사이에서 안전과 소통을 조율하는 전문가다.

할리우드에선 ‘미투’ 운동 이후 모든 작품에 도입이 의무화됐다. 찬반 논란도 뜨겁다. 한 여성과 두 남성의 성적 긴장 관계를 그린 영화 ‘챌린저스’의 여주인공을 연기한 젠데이아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상주하는 촬영 현장이 “환상적”이었다고 극찬한 반면,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이나 티모테 샬라메와 신작 ‘마티 슈프림’을 찍은 기네스 펠트로는 불편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에서 빠르게 정착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 2일 제26회 전주국제영화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주제로 국내에서 처음 열린 포럼에서 한국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권보람씨, 지난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으며 단편 ‘갈비뼈’를 찍은 배우 권잎새, 노년 여성의 성폭행 피해를 그린 영화 ‘69세’의 임선애 감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 현장에서 대본에 없던 노출이나 키스신 등을 요구받아 불쾌했다는 뒷말이 종종 나온다.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현장에 피해를 줄까봐 배우들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조정자가 있었으면 그렇게 찍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영주’ ‘빅슬립’ 등 독립영화 제작자 출신인 권 코디네이터는 2020년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든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 지정 공식 교육기관에서 6개월 과정을 이수했다. 가이드라인은 노출 또는 성행위 장면에서 사전 협의와 준비가 배우의 동의하에 이뤄졌는지, 노출 의상은 적절한지 등을 체크하고, 배우가 불편함을 호소하면 촬영을 중단시키는 등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소개한다.

지난 2일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포럼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불청객이 아닌 동반자입니다’에 참여한 권보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오른쪽부터), 배우 권잎새, 임선애 감독, 사회자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제공

아직 한국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없을 때 일본 인력의 도움을 받았던 권잎새는 “성적·노출 장면의 구체적인 연기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를 최소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게 맞나?’ 생각이 들어도 연출자와 구체적인 소통을 하기 힘든데,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통해 내가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까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고, 보호 속옷도 여러벌 입어보면서 안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권 코디네이터는 “성적인 장면은 시나리오에 두루뭉술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파악하고 감독과 배우 사이 조율을 통해 구체화하는 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권잎새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와 일하며 노출 장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며 “이후 연출자에게 내 의견을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배우와 감독, 스태프가 꼭 한번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수지, 이진욱 주연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의 촬영을 마친 임 감독은 “아직 현장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아 주로 의상·분장팀에서 스킨십 장면을 담당하는데 고충을 많이 이야기하더라”며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투입되면 모든 스태프가 자유롭고 편안하다는 말이 이해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작에서 성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침대에 눕히는 등 몸을 다루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힘든 점이 있었을 텐데 현장이 지연될까봐 참고 넘어갔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어, 소통에서 내가 놓치는 부분을 챙겨주는 직군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권 코디네이터는 “성적인 장면뿐 아니라 수술, 출산, 수유, 목욕 등 몸을 민감하게 다루는 모든 장면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권했다.

영화 ‘야당’.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아니지만 최근 개봉작 ‘야당’은 집단 마약 난교 장면에서 현역 무용가인 무브먼트 디렉터를 기용해 모든 동작을 배우들과 소통하고 여러 차례 리허설하면서 장면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을 주최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김선아 운영위원은 “영화 현장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이 되어야 더 많은 창의력의 싹틀 수 있다고 믿는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서로 존중할 수 있는 현장 환경이 되는 데 필요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전주/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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