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독도 최초주민 최종덕은 독도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김성권 2025. 5. 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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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독도박물관 “어부지용(漁父之勇)” 특별전시회 개최
울릉군 독도박물관이 독도 최초주민 최종덕의 삶의 재 조명하는 특별전시회 ‘어부지용(漁父之勇)’을 내년 4월30일까지 개최한다.[울릉군 독도박물관 제공]

[헤럴드경제(대구·경북)=김성권 기자] 독도 최초의 주민 최종덕의 삶을 재조명하는 특별전시가 울릉군 독도박물관에서 열린다.

독도박물관은 특별전시실에서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의 삶을 재조명하는 특별전시회 ‘어부지용(漁父之勇)’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를 개최하는 2025년 5월 1일은 최종덕이 출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해당 일자에 전시회를 연다는 게 독도박물관의 설명이다.

특별전시 제목인 “어부지용”은 장자(莊子)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다.

어부가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오랜 체험에서 얻은 어부의 용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울릉군 독도박물관이 독도 최초주민 최종덕의 삶의 재 조명하는 특별전시회 ‘어부지용(漁父之勇)’을 내년 4월30일까지 개최한다.[울릉군 독도박물관 제공]

울릉도 어민이었던 최종덕은 자신의 어업 지식을 기반으로 독도에 정주해 생활했으며, 독도의 최초 주민이 된 인물로서 해당 사자성어를 관통하는 삶을 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울릉도 정착기, 독도 적응기, 독도 어업 확장기, 독도 영유권 강화기, 영원한 독도인 최종덕으로 구성된 5개의 섹션을 통해 최종덕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1925년 5월 1일 평안남도 순안에서 출생한 그는 1930년 가족과 함께 울릉도로 이주한 이후 울릉도 어민으로 생활했다.

1965년 울릉군 도동 어촌계로부터 독도 공동어장 채취권을 획득한 이후 본격적인 독도의 정주어업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 과정에서 발명가이자 개척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종덕은 해녀들을 고용해 독도에서 미역을 채취하던 기존 어업방식을 포기하고, 겨울철 소수의 해녀를 고용했다.

울릉군 독도박물관이 독도 최초주민 최종덕의 삶의 재 조명하는 특별전시회 ‘어부지용(漁父之勇)’을 내년 4월30일까지 개최한다.[울릉군 독도박물관 제공]

‘하다카’라고 불리는 일종의 간이잠수기 어업을 통해 소라, 전복, 미역 그리고 문어 등을 어획하며 독도의 어업 관행을 변화시킨 장본인이다.

독도 서도에 집을 지어 어민보호소라 칭하며 어민들과 생활하며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 갔다.

이 과정에서 독도의 주요 시설물 공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독도에 있어 핵심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독도를 한국 어민의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은 1987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숨을 거두면서 끝내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종덕의 독도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 어민보호소를 재현하고 구축했으며, 그가 시행했던 간이 잠수기 어업의 실물모형이 전시돼 생동감을 전한다.

또 관련 신문 기사 자료, 다양한 상장 및 훈장증도 선보인다.

독도서 조업한 사공, 해녀, 인부 등의 회고 영상도 감상할 수 있어 최종덕의 삶과 활동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한권 울릉군수는“독도 최초 주민이었던 최종덕씨는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독도 어장을 개발하고 오늘날 독도의 정주기반을 닦은 자랑스러운 울릉인이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독도를 지키고자 했던 최종덕의 기상과 의지를 배워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ks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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