껴안아주는 것 끄덕여주는 것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 시인 2025. 5. 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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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伴侶의 뜻은 '짝이 되는 벗'이다.

이 시에서는 짝이 부부이거나 아주 친한 이성 친구다.

마지막 연, "서로의 잠 속으로 스며들어가/젖은 얼굴 어루만지면/새 빛은 다시/우리 가난한 창으로"가 감동적인 이유는 "젖은 얼굴" 덕분이다.

한 사람이 아플 때 옆의 반려자가 진심을 다해 위로해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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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허은실 시인의 ‘반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반려

허은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 책임이 있어요

거친 여울 머무는 기슭에서
서로의 눈에 스민 계절을 헤아리며
표정이 닮아갈 날들

그리하여 어느 날
세상에 지고 돌아온 당신이
웅크려 누울 때

적막한 등 뒤에서
내 몸을 가만히 포개고
우리는 인간의 말을 버리기로 해요

우리 숨이 나란하도록
밤이 깊도록
당신이 나를 업고 걷던 그 밤처럼

당신의 등에
내 글썽임과 부끄럼까지를
잠시 올려두고
긴 밤을 낙타처럼 걸어갈 거예요

서로의 잠 속으로 스며들어가
젖은 얼굴 어루만지면
새 빛은 다시
우리 가난한 창으로

「회복기」, 문학동네, 2022년

반려伴侶의 뜻은 '짝이 되는 벗'이다. 이 시에서는 짝이 부부이거나 아주 친한 이성 친구다. 남자가 밖에서 지고 집에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 밖에서 큰 상처를 받고 귀가한 것이다. 여자는 가만히 몸을 포개는 행동을 함으로써 남자를 위로해준다. 그녀는 남자의 등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고 있다. 당신이 나를 업고 걸었던 그 밤을 잘 기억하고 있으므로.

[사진 | 문학동네]

이제는 내가 당신을 위로해줄 차례다. 마지막 연, "서로의 잠 속으로 스며들어가/젖은 얼굴 어루만지면/새 빛은 다시/우리 가난한 창으로"가 감동적인 이유는 "젖은 얼굴" 덕분이다. 땀에 젖은 것이 아니라 눈물에 젖은 것이다. 한 사람이 아플 때 옆의 반려자가 진심을 다해 위로해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은가.

이 시에서는 '사랑'이라는 시어가 나오지 않는다. '위로'라는 낱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근년에 읽은 그 어떤 시보다도 열렬한 사랑의 찬가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다. 꼭 껴안아주는 것, 네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한다고 고개 끄덕여주는 것.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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