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허남정 단장 동행기<9>

2025. 5. 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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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히비야공원으로 들어서는 행렬.

오늘은 D데이. 최종 목적지인 도쿄에 입성하는 날이다. 새벽에 짐을 내리기 위해 나서니 난간에 비둘기가 한 마리 얌전히 앉아 있었다.

8시에 JR가와사키역에서 출발했다. 출근시간대라 유동 인구가 많아 체조는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 했다.

최종일이라 일일참가자가 많다. 모두 120명이 넘는 규모다. 체조를 마치고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번호를 외쳤다.

이경수 단원이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는데비둘기 두 마리가 원 안으로 들어와서 아장아장 걸어다닌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며 하늘이라는 닉네임의 여성과 얘기를 나누었다. 조선통신사들은 오사카항에 입항후 일본측이 준비한 작은 배로 옮겨타고 요도강을 따라 교토까지 갔다.

그 배를 연구하는 모임의 회원이라고 했다. 이번 오사카 만국박람회 한국의 날 행사의 스탭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제10차 조선통신사 정사 홍계희를 수행한 23살의 아들 홍경해가 쓴 조선통신사 동행기를 번역하고 있다고 했다.

에도의 당시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일본인들에게도 좋은 자료라며 열을 내어 책의 내용을 설명했다. 덕분에 땡볕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도쿄 시나가와역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휴식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광장 바닥에 앉아 간식을 먹는 우리들의 모습이 노숙자와 다르지 않다.

천황이 사는 황궁 인근을 걸으며 돌아보니 120여 명의 행렬이 장관이다. 서양인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사쿠라다문을 지났다. 1860년 대로(大老) 이이 나오스케가 미토번의 무사들에게 습격을 받아 이곳에서 사망했다.

에도에서는 드물게 폭설이 내리는 아침 가마를 타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이 사건으로 정국이 요동치며 유신으로 치닫는다.

그는 히코네번주로 당시 국무총리격인 대로의 직책에 있었다. 히코네성의 천수각에서 비와호를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히비야 공원으로 들어서니 민단 관계자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박수와 사물놀이패의 풍악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서울을 떠나 걸어서 1200km의 여정.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단원들의 협력과 좋은 날씨 그리고 일본 단원들의 헌신적인 지원에 힘입어 골인했다. 벅찬 감격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국체육진흥회 선상규 회장의 따님이 아버지가 있었어야 할 자리를 보여드리겠다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도쿄에 출장을 왔다고 했다.

그녀가 연결한 선회장의 얼굴을 보며 나도 엔도 회장도 영상통화를 했다. 민단 도쿄본부와 한일친선협회가 공동으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지난 한 주일도 돌이켜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요시와라에서 아침에 료칸을 나서며 눈앞에 버티고 있는 눈덮힌 후지산을 보았을 때의 감동. 날이 흐려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토 단원은 일전에 넘어져 입술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어 내가 격려하며 손을 잡고 함께 걸은 적이 있었다. 일본 단원들은 무관심했고 본인도 자기의 실수로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했다.

걸으며 나카니시 단원과 패티김의 ‘이별’을 같이 불렀는데 그녀가 길옥윤씨 휠체어를 타고 나왔던 마지막 콘서트를 보았다고 했다. 며칠 뒤에 나타난 그녀는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길옥윤 평전을 내게 선물했다. 그녀는 홍길동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서는 단원들에게 각종 간식을 나누어준다.

가장 난코스라는 하코네 고개를 넘을 때 ​일일 참가한 여성이 한국 단원들을 위해 차게 냉장한 밀감을 가져왔다. 전날에 이어 두 번째다. 일일이 예쁘게 까서 냉장을 한 그녀의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하코네 고개를 넘을 때 조선통신사 일본측 최고참인 시마씨의 두 딸이 와서 엄마를 부축하며 같이 걸었다. 그녀는 둘째 딸을 소개하며 췌장암 투병중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비록 야위었지만 그녀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일본인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자연재해가 많아 사생관이 담백한 편이다. 2011년 3월 11일 동북대지진 때는 쓰나미로 일거에 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저녁에는 우에노의 중국식당 도텐코우에서 환영행사가 있었다. 일본측이 준비한 정사 부사 종사관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무대에 섰다. 한복전문가 강정춘 여사가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단장으로서 완보 보고를 했고 선상규 회장의 메시지를 부사 박해룡이 대독했다. 2시간 여 환영식을 마치며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과 ‘후루사토’를 합창하며 대미를 장식했다.(2025. 4. 30)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 겸 정사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완보를 축하하는 양측 대표. 엔도(왼쪽) 회장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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