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지진 그 후, 구호 물품 대신 폭격 내리꽂는 군부

이유경 2025. 5. 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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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강진 사망자가 1만명 넘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부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반대 세력에 대한 공격의 호기로 이용하고 있다. 사가잉과 만달레이에 피해가 집중되었다.
4월2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구조대원들이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AFP PHOTO

3월28일 미얀마에서 발생한 규모 7.7 지진은 한 세기의 강진으로 기록됐다. 중북부 사가잉 지역을 진앙지로 만달레이, 바고, 샨주 남부와 미얀마 군부가 철통같이 방어 중인 수도 네피도까지 실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만명을 웃돌 가능성이 71% 이상이라고 진단했다. 지진으로 인한 폐기물 양도 피해 규모를 짐작게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4월14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잔해 및 폐기물 양이 무려 250만t에 달하고 이를 처리하는 데 트럭 약 12만5000개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4월12일 망명 언론 〈버마 민주의 소리(DVB)〉 데이터 팀은 인명 피해를 사망자 4355명·부상자 7830명·실종자 145명으로 추산했다. 사망자 수를 3700명대로 추산한 군부의 통계보다 높은 수치다. 〈데이터 포 미얀마〉는 4월3일 사가잉 지역의 사망자 수가 467명으로 가장 많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골든타임이 중요했을 수색과 구조 작업은 네피도와 만달레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었다. 건물 80%가 붕괴된 사가잉 지역은 장비, 인력, 구호물자 반입 등 모든 면에서 소외된 양상이다. DVB가 4월6일자 보도에서 “사가잉 지역은 수색 작업을 일단 멈추고 구호 작업에 전면 몰두하기로 했다”라고 인용한 현지 활동가의 말은, 생존자 수색이 어려운 만큼 살아남은 이들이라도 확실히 살리고 보자는 절박한 상황을 말해준다.

사가잉 지역은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반군부-민주 진영의 과도정부인 민족통합정부(NUG)와 이들의 통제를 받는 시민방위군(PDF)이 군부와 치열하게 교전을 벌여왔다. 민족통합정부는 사가잉 지역에서 타운십 5~6곳을 탈환한 후 사실상 정부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본 만달레이 지역에서도 반군부 무장 그룹인 ‘만달레이 시민방위군’이 도심 밖에서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2021년 쿠데타는 미얀마의 내전 지형을 적잖이 바꿔놓았다. 그전까지 국경 변방 소수민족 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내전은 이제 사가잉과 만달레이 등 ‘버마족 심장부’로 통하는 중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사가잉은 반군부 진영의 심장부가 되었다. 미얀마 군부가 이들 지역에 구조 인력과 구호물자를 보내는 대신 공습과 폭격을 지속하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군부는 지난 4년간 지상전의 열세를 공습으로 극복해왔다. 반군부 활동가 조직 ‘블러드 머니 캠페인’이 올해 1월 발표한 보고서(Close the Sky; The Dire Consequences of inaction on Aviation Fuel in Myanmar)를 보자. 2021년 2월1일부터 2024년 11월30일까지 군부의 공습이 총 4022건 발생했다. 이로 인해 2257명이 사망하고 34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내전의 한복판에서 ‘사가잉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뒤집힌 땅은 괘념치 않는 듯 군부는 그곳을 향해 폭격을 내리꽂고 있다.

민족통합정부의 인도주의 업무 및 재난 관리부(MOHR)에 따르면 지진 발생 당일부터 2주간 군부는 공습과 폭격을 총 92건 일으켰다. 사가잉과 만달레이 등 지진 피해가 큰 두 지역이 각각 18건으로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다. 유엔의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 톰 앤드루스는 4월10일 유엔 인권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유엔 안보리가 미얀마 군부의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하고 구호물자의 진입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도록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지진이 발생한 뒤 휴전 노력이 있기는 했다. 민족통합정부는 지진 발생 이틀 후인 3월30일, 향후 2주 동안 방어 목적 외 공격은 하지 않겠다며 휴전을 선포했다. 민족통합정부는 또한 “시민방위군은 전투가 아닌 재난 대응에 총동원한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아라칸 군(AA), 탕민족해방군(TNLA), 미얀마민족민주동맹(MNDAA) 등 반군부 전선에서 전투력을 보여온 ‘삼형제 동맹’도 4월 한 달 휴전하겠노라 바통을 이어받았다. ‘휴전은 없다’던 군부도 4월2일부터 20일간의 휴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도 사가잉과 카친주에서 군부 공습이 계속됐다. 군부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반대편 공격의 호기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허가증 미발급’ 빌미로 구호 방해하기도

군부는 과거에도 자연재해나 재난 발생 시 분초를 다투는 재난 현장에 ‘허가증’을 빌미로 구호 활동을 방해했다. 언론의 취재 요구엔 봉쇄로 대응하기 일쑤였다. 2008년 5월2일 발생한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룻밤 사이 약 13만명이 사망 혹은 실종된 거대한 자연재해를 두고 국제 구호기관과 언론 모두를 가로막았다. 당시 군부가 긴급 구호보다 신경 쓴 건 상하 양원 25%를 군인 몫으로 배정하고 쿠데타까지 합법 조항으로 새겨넣은 ‘2008 군정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였다. 긴급구호를 방치한 채 재난 발생 일주일 만에 국민투표를 강행했고 군정 헌법은 92.4%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 헌법 417조가 명시한 비상계엄 선포 절차도 무시한 채 군부는 2021년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2023년 5월 사이클론 모카가 다시 미얀마를 강타했지만 군부의 재난 대응 매뉴얼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피해가 심각한 라카인주를 취재하던 〈미얀마 나우〉 사이 조 타이케 사진기자는 선동죄로 기소됐고 군사법정에서 20년 형과 강제 노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오늘도 악명 높은 미얀마 인세인 감옥에 갇혀 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2월25일 “사이 조 타이케 기자가 수감시설 내 가혹행위를 폭로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감옥 안에서 매일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라며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지진 발생 직후부터 미얀마로 향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구조 인력과 자금이 어디를 통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한국 외교부도 3월31일 ‘국제기구’를 통해 약 200만 달러(약 28억원)를 미얀마 지진 피해 복구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4월8일엔 외교부가 200만 달러를 추가로 전달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보도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구호 자금 전달 통로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다. 미얀마 지원이 ICRC를 통할 경우 이는 미얀마 현지 적십자사인 미얀마 적십자사(MRCS)를 통해 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MRCS가 오랫동안 군부와 가까운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미얀마 시민사회는 이곳을 통한 국제사회 지원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선의가 자칫 군부의 왜곡된 구호 정책에 이용될 우려가 없지 않다.

미얀마 군사정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AFP PHOTO

군부독재가 횡행하던 1990~2000년대, 미얀마 적십자사 대원들은 경찰이나 군의 스파이로 이용되거나 반정부 세력과 정치인 체포 시에도 보조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얀마 망명 시민단체 ‘프로그레시브 보이스’는 2010년대 후반 아웅산 수치를 수장으로 하는 민족민주동맹(NLD) 정부 시절에 이러한 미얀마 적십자사의 흑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2015년 당시 미얀마 적십자사 이사장인 타 흘라 슈웨는 “이제 인도주의적 업무에만 심혈을 기울이겠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 시기 미얀마 적십자사는 국군의 날 퍼레이드 같은 군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 이후 모든 노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2021년 3월27일 MRCS가 국군의 날 행사에 참여한 건 그 같은 우려를 재차 확인시켜준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마이클 마틴 연구원은 팟캐스트 ‘인사이트 미얀마’에서 이렇게 밝혔다. “전통적으로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국제사회에서 정부로 인정받는 당국자하고만 협력한다. 미얀마에서도 ICRC는 군부 통치기구인 국가관리위원회(SAC)하고만 협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진 발생 이틀 뒤인 3월30일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 265개가 모여서 ‘미얀마 지진 긴급대응 코디네이션 팀(MERCU)’을 긴급 결성했다. MERCU는 성명문에서 “구호기관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군부에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4월13일자로 업데이트된 MERCU의 상황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가잉 지역 구호활동가들이 군부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군부는 이들에게 구호물자를 (민족통합정부 통치 영토로 넘기지 말고) 사가잉시 군부 통치 지역에 놓고 가라며 압박하고 있다.”

이유경(국제분쟁 전문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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