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진은 건드리지 말자 [뉴스룸에서]

박서강 2025. 5. 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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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찍은 만큼 소중했던 필름 사진의 추억
디지털 시대 사진 악용 범죄 다양하고 교묘해져
가정의달 미끼로 한 ‘무료 가족사진’ 사기 기승
올림푸스 펜 하프사이즈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필름의 반 컷만 감광되는 구조의 절약형 카메라다. 24컷짜리 필름 한 통으로 48컷 이상을 찍을 수 있어 인기가 많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버지는 어린이날 나들이를 앞두고 동네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오셨다.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대여료를 지불하면 하루 단위로 카메라를 빌려 쓸 수 있던 '옛날 옛적' 얘기다. 당시 셔터 한 방에 필름 반 컷씩만 찍히는 '올림OO' 카메라가 인기였다. 24컷짜리 필름 한 통만 있으면 48컷 이상을 찍을 수 있는 '절약형'이다. 한 컷 온전히 찍히는 카메라에 비하면 해상도가 절반밖에 안 되지만, 필름값이 부담스러운 서민들에게 화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입학∙졸업 시즌이면 동네 사진관마다 이 카메라 선점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카메라 귀하고 필름 '닳는' 게 무섭던 그 시절엔 사진을 찍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다른 사람의 추억을 위임 받아 기록하는 일이라, 우선 책임이 막중했다. 사진 촬영 경험도 거의 없어서 다들 카메라만 잡으면 손을 떨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직후엔 "(사진에서) 발이 잘렸다" "흔들렸다" "플래시가 안 터졌다"는 등의 '고객 불만'도 줄을 이었다. 실수로 필름 한 통을 다 '날려먹는' 비극마저 종종 일어나다 보니, 단체 사진 찍을 때 누구도 선뜻 "내가 찍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한 방 한 방 찍어낸 입학, 졸업, 수학여행, 가족 사진들은 앨범 속에 차곡차곡 추억으로 쌓여갔고, 한 삶의 기록이자 가족의 보물이 됐다.

비용 부담에 "잘 못 찍었다"는 원망까지, 왠지 어렵고 부담스럽던 사진은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만만해졌다. 비싸고 유한한 필름과 달리 추가 비용 없이 무한정 찍을 수 있고 찍자마자 잘 찍혔는지 확인도 가능하다.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찍으면 그만이니, 사진이 어려울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때마침 인터넷, 통신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스마트폰과 SNS의 접목으로 공유 개념이 확산하면서 사진은 누구나 쉽게 찍고, 주고받고, 즐길 수 있는 '심심풀이 땅콩'이 됐다.

2005년 8월 17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서울 경희대에서 졸업생 가족들이 각자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디지털 사진은 다루기 쉬워진만큼 부작용을 수반한다. 휴대폰이나 PC, 클라우드에 수만 장, 수십만 장씩 쟁여지면서, 사진 한 장 한 장에 부여돼 오던 '보물처럼 소중한 추억'의 지위는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뽀샵' 등 변형에 취약한 점도 진실 전달자로서 사진의 의미를 반감시킨다. 아쉽지만 이 또한 시대상의 변화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다만 부작용 수준을 넘어 범죄에 사진이 악용되고, 그 수법 또한 날로 치밀하고 교묘해지는 상황은 매우 걱정스럽다. 최근 학교에서 졸업앨범이 사라지는 것도 '딥페이크' 범죄가 판을 치면서 나타난 반작용이다. 악의적 사진 조작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일생에 하나뿐인 졸업앨범의 추억마저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가정의 달을 앞두고는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준다며 유인한 뒤 촬영 원본 제공 조건으로 수십 만 원짜리 액자 구입을 유도하는 신종 사기도 등장했다. '속았다'는 느낌이 들어도 가족이 다 모여 찍은 사진이 아까워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심리를 파고드는 수법이다. 그 덫에 주로 걸려드는 건 평상시 가족 사진을 찍고 싶어도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내는 서민들이라 더 기가 막힌다. 굳이 가정의 달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족을 악용하는 비열한 범죄만은 '척결'돼야 한다. 5월 '대목'을 맞아 비슷한 수법을 궁리 중인 이들이 있다면 제발 부탁컨대, 사진이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가족 사진은 건드리지 말자.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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