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잿빛 슬픔 속 고운사를 밝히는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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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화마가 할퀴고 간 경북 의성군 고운사에는 깊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다.
지난 3월 경북 안동과 의성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은 149시간 동안이나 소중한 산림을 앗아갔고, 천년고찰인 고운사에도 깊은 상처를 입혔다.
어두워진 고운사를 나서며 폐허 속에서도 환하게 불을 밝힌 연등의 불빛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비의 따스함이 온 세상 가득 퍼져 나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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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화마가 할퀴고 간 경북 의성군 고운사에는 깊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다. 지난 3월 경북 안동과 의성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은 149시간 동안이나 소중한 산림을 앗아갔고, 천년고찰인 고운사에도 깊은 상처를 입혔다. 산사 입구에 들어서자,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검게 그을렸고 매캐한 연기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더욱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형형색색의 연등이 검게 탄 나무들 사이에 걸려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담해 보이지만, 현재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서 영주 부석사를 비롯한 인근 지역의 수많은 사찰을 관장하는 큰 절이다.

산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 대웅전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는 또 한 번의 처참한 산불 피해 현장이 펼쳐진다. 대웅전 앞에는 불에 탄 가운루와 종루가 폐허가 돼 있었으며 그 위에 산불에 금이 가고 검게 그을린 종이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었다. 주변에는 아직도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복구의 희망도 싹트고 있다. 전국에서 이곳을 찾아 아픔을 같이하고 기와불사에 동참하며 정성스럽게 쌓아둔 기와들에서 희망의 작은 불씨를 피워 올리고 있어 위로를 받는다.

어두워진 고운사를 나서며 폐허 속에서도 환하게 불을 밝힌 연등의 불빛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비의 따스함이 온 세상 가득 퍼져 나가기’를 기원했다. 특히 최근 산불로 깊은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부처님의 크나큰 자비와 따뜻한 사랑이 ‘연등의 불빛처럼 환하게 전해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본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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