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의 보수정치 시대

김형원 기자 2025. 5. 5. 00: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수 정치인’ 김문수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5차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로 확정된 뒤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990년대 동구권 붕괴를 계기로 노동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노동운동을 제도권 내로 이어가자”며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중당은 단 하나의 의석도 얻지 못하고 해산했다. 이후 택시운전수 일을 하던 김 후보는 1994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권유로 국민의힘 전신(前身)인 민주자유당에 전격 입당했다. 김 후보는 보수 정당 입당 배경에 대해 “밖에서 혁명을 계속 꿈꾼다고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인재였지만 곧바로 ‘꽃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김 후보는 당시 야당(새정치국민회의) 텃밭인 경기 부천 소사에 출마했다. 상대는 김대중 총재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이었다. 당시 김 후보가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는 자서전을 펴내자, 박 의원은 ‘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라는 저격용 책을 냈다. 이 일로 고소전까지 벌어지면서 부천 소사의 ‘넥타이 전쟁’은 전국적 화제를 불러모았다. 김 후보는 1.94%포인트 격차의 신승을 거뒀고, 이후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2025년 국힘 대선 후보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 후보로 선출된 직후, 최종 경쟁자였던 한동훈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재명 집권을 막기 위해 어떤 세력과도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김 후보의 또 다른 정치 변곡점은 소속당(한나라당)이 ‘차떼기당’ 꼬리표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逆風)으로 위기에 몰렸던 2004년 17대 총선 때다. 김 후보는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죽을 각오로 한나라당을 대청소하겠다”고 했다. 실제 김 후보는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등 중진 37명을 불출마시켰고, 강남 출마가 거론됐던 홍사덕 원내 총무는 경기 고양 일산갑으로 보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쳤다. 궤멸 위기를 딛고 121석을 얻은 당시 ‘김문수 공천’은 지금도 공천 개혁의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김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데 이어 2010년 재선에 성공했다.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추진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획, 수도권 통합 요금제, 광교·판교·다산신도시 개발, 삼성반도체 평택캠퍼스 유치는 김 후보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반면 2011년 소방서에 전화해서 소방관에게 거듭 ‘관등성명’을 요구했던 녹음 파일이 공개된 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김 후보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대세론을 형성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밀렸다.

김 후보가 ‘선출직 휴지기(休止期)’에 들어간 것은 2016년 20대 총선부터였다. 당에서는 “험지(險地)에 출마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김 후보는 대구 수성갑 출마를 강행했다. 대구 수성갑에서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맞붙어 24.6%포인트 격차로 크게 졌다. 이 일을 계기로 당내에서 김 후보의 정치적 위상은 하락했다. 이후 김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서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지만 박원순 전 시장에게 패배했다. 이듬해인 2019년 김 후보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하면서 ‘아스팔트 보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랬던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됐다.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출석한 국정감사에서 김 후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하면서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보수 진영 내에서 김 후보의 선명성이 부각됐고, 지난해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2024년 1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서영교 민주당의원의 요구에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사태와 관련해 일어서서 사과하고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은 거부하고 자리에 앉아있다./김지호 기자

정치권에선 “김문수가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정치 무대에 다시 올랐다”는 평가가 많다.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그는 계엄 해제 후 국회 긴급 현안 질문 때 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국무위원 단체 사과’ 요구를 홀로 거부했다. 당시 김 후보만이 자리에 앉아 있던 장면이 회자되면서 지지층 사이에선 ‘꼿꼿문수’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전까지 대선 주자 후보군에 포함되지도 않았던 김 후보는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주자 최상위권에 줄곧 이름을 올렸고, 결국 국민의힘 대선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