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어머니의 그륵-정일근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초등학교 3학년쯤 5월 5일 어린이날. 아버지는 "여기 짜장면 한 그륵 주시오."라고 크게 말씀하셨다. 허름한 군내버스를 타고 강진 읍내에 나가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 보았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단연코 짜장면이다.
어머니는 밥상에 늘 된장국 한 그륵을 담아 주셨고, "밥 한 그륵, 국 한 그륵 다 먹어야 키큰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그륵 속에는 어린이날도 들어 있고, 키크는 비법도 들어 있고, 어머니, 아버지도 들어 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밥 한 그륵, 국 한 그륵이라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릇이라 한다. 그들의 사랑을 담기에 한참 부족한 그릇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