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노동운동가에서 대선 후보까지…김문수의 시대 여정
제도권 정치로 선회 후 경기도지사·노동부 장관 거쳐 보수진영 대표 주자 부상



그는 영천초등학교, 경북중·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는 듯했으나, 곧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서울대 1학년 시절, 심재권의 권유로 '후진국 사회연구회'에 가입했고, 2학년 때는 김근태를 통해 공활(공장 활동)을 접하며 노동운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되며 학교를 떠났고, 서울대 졸업장은 25년 뒤인 1994년에야 받을 수 있었다.
19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운동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시기에 김 전 장관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두 흐름의 중심에 섰다. 그는 제적 후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자의 삶을 몸소 체험했다. 한일도루코에 위장 취업해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산업현장의 최전선에서 노동운동을 이끌었으며, 서울노동운동연합,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등 1980년대 내내 노동운동하면서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땀 흘렸다.
그의 연설문은 청년들 사이에서 '노동투쟁의 신화', '현장에 뿌리박은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86년에는 인천 5·3 민주항쟁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2년 6개월간 복역했다. 수감 중 주체사상파 활동가들의 권유를 거절하고 현장 중심의 실천을 중시하는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흐름이 이념 중심으로 기울어지자 김문수는 현실적인 개혁과 변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고,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보수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는 혁명이 아닌 제도 안에서 싸워야 할 때"라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변절자'라고 비난했지만, 다른 이들은 '현실을 꿰뚫는 개혁가'로 평가했다. 김 후보의 이러한 선택은 시대의 전환과 함께 자신의 내면적 갈등, 그리고 새로운 길을 향한 결단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해 첫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3선을 거듭하며 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7대 총선 당시 공천심사에서 유력 인사들을 탈락시키고 정치 신인을 대거 발탁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당시 "돈 싸들고 오는 사람부터 탈락시켰다"고 밝혔다고 한다.

2006년, 김 전 장관은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민선 4·5기 도지사에 당선되며 행정가로 변신했다. 그의 도정 철학은 '머슴론'과 '스피드 행정'으로 요약된다. 그는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며 "경제를 살려야 노동도 살아난다"는 실용 노선을 고수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2020년엔 자유통일당을 창당하며 기독자유통일당으로 합류했다. 2022년에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발탁돼 다시 노동 정책 최전선에 섰으며, 2024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재입각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장관직을 내려놓고 다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 지난 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56.53%의 득표율로 제21대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그는 서울대생에서 위장취업 노동자, 민주화 투사에서 보수 정치인, 행정가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그의 삶은 단순한 '변신'이 아닌, 시대와 함께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정립해온 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