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전에 재생에너지 탓하는 어리석음 [아침햇발]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스페인·포르투갈 대정전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전체 전력공급의 60%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교통·통신·금융·공장·병원 등이 마비됐다. 19시간 만에 대부분 복구됐지만, 6천만명에 가까운 피해자와 7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유럽 역사상 최악의 정전사태이다.
사고원인으로 재생에너지의 수급 불안정, 이상기후로 인한 유도 대기 진동 발생으로 스페인~프랑스 간 송전망 단절, 송전망 투자 미흡, 전력시스템 오류, 사이버공격 등 온갖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미궁이다. 4월28일 오후 12시33분 이후 5초간 모든 일이 벌어졌다. 스페인 남서부의 태양광 발전소들에서 동시에 전력망 접속이 끊기는 1차 탈락 발생→전력망 접속 회복→2차 태양광 발전소 탈락 발생→스페인~프랑스를 잇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전력망 차단→대정전 사태가 이어졌다.
다른 나라도 유사사고 발생 가능성을 배제 못해 불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보수언론은 재생에너지 탓으로 돌리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재생에너지 탓?” “재생에너지 한계 보여준 것?”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재생에너지는 연관이 없다”고 강조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수언론 중 그 어느 곳도 스페인 정부가 틀렸다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 불안, 에너지 정책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최대한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책임있는 언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언론들은 평소 ‘원전 확대’에 앞장서 왔다. 이참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포감을 키워 원전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실제 일부 보수언론은 “이번 사태로 일부 국가들의 탈원전 기조가 바뀔 수 있다”(한국경제)고 보도했다. 전형적인 ‘제논에 물대기’이다. 스페인 총리는 “이 사건을 원전 부족과 연결짓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정전은 재생에너지가 비중 있는 전원으로 부상하기 이전에도 끊이지 않았다. 유럽만 봐도 2003년 이탈리아·스위스 대정전으로 5천만명 이상이 피해를 봤고, 2006년에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대정전으로 4천만명 이상이 타격을 입었다. 사고원인은 전력선이 인근 나무와 부딪혀 차단되거나, 갑작스런 한파로 전력수요가 급증한 것이었다. 정전은 특정전원의 문제라기 보다 전력망 운영 및 관리의 문제라고 봐야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스페인보다 훨씬 높은 나라들이 많지만, 큰 사고 없이 관리하고 있다.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비중(2023년 기준)은 풍력, 태양광, 수력을 모두 합쳐 50% 정도다. 노르웨이는 90%, 브라질과 뉴질랜드는 80%를 넘는다. 제조업 강국으로 ‘탈원전’을 한 독일은 60%를 상회한다. 반면 우리는 이제 겨우 10%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기업들이 선진국의 탄소무역장벽에 무방비이고, 아르이(RE)100 이행에도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가난뱅이가 부자 걱정하는 꼴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대정전이 주는 교훈을 놓치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시간·계절·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 때문에 다른 전원에 비해 전력계통 관리가 까다롭다. 또 유럽이나 북미는 국가 간 전력망이 서로 연결돼 있어 전력이 남으면 이웃나라로 보내고 모자라면 받는 ‘품앗이’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고립된 ‘에너지 섬’과 같아 불리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는 탄소중립과 RE100 이행을 위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전 대비와 관리를 잘하면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망과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선 전력 수급의 갑작스런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공급과 수요 양쪽에서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급 쪽은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확대, 관성자원 부족에 대응한 동기조상기 확보 등이 필요하다. 낮에 태양광의 전기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면 ESS에 저장했다가, 밤에 충전한 전기를 사용해 수급균형을 맞추는 식이다.
수요 쪽에서는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해서 전력수급 상황과 연계한 혁신적이고 유연한 요금제 도입이 요구된다. 영국 전기판매회사인 ‘옥토퍼스에너지’는 밤시간대 전기요금을 낮시간대보다 올려, 밤시간대의 전기수요를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은 낮시간대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수급 불균형을 완화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용도별로 전국 단일 전기요금제이다. 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시간·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 나아가 전기판매시장 경쟁체제 도입 등의 혁신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충돌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과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다른 전원에서 전기수급 변동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해줘야 하는데, ‘경직성’ 전원인 원전은 그 역할이 어렵다. 조절기능을 해주던 석탄·가스(LNG) 발전소가 줄어드는데,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동시에 늘어나면 전력계통의 구조적 취약성이 커진다.
우리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발전 비중 합계가 40% 정도로 유럽 주요국에 비해 낮다. 하지만 이미 지방에서 둘 간의 충돌로 출력감발과 송전망 접속제한이 빈발하는 만큼 손놓고 있을 상황도 아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전도 현재의 26기에 더해 4기를 건설 중이고, 정부는 대형 원전 2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당장은 재생에너지와 원전 모두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최적의 배분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지난 8년 간 ‘탈원전’과 ‘원전올인’이라는 극과극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큰 혼선을 겪었다. 기후에너지 정책이 진영과 이념을 앞세운 과도한 정치논리로 오염됐다. 스페인 사태 이후 재생에너지 공포 조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제는 미래와 후손을 생각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현실조건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경로를 찾아야 한다. 조기대선 이후 새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기후에너지 정책의 정상화이다.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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