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일자리, 사라진 일자리 공약 [권상집의 논전(論戰)]
AI 이해·활용하는 ‘인재 육성’에 먼저 나서야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1대 대통령선거가 다가왔다. 대선의 특징은 각 당의 후보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공약과 약속을 쏟아낸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에서 눈에 띄는 경제 공약은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유력 후보들은 AI로 시작해 AX(AI Transformation: 인공지능 전환)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AI 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AI·반도체 분야에 적게는 50조원, 많게는 200조원의 투자를 선언했다.
모든 후보가 선제적 투자를 통해 AI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주도하겠다는 건 미국과 중국 등 기술 패권의 흐름을 좌우하는 강대국조차 정부 주도로 AI 육성 방안을 수립해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이 AI 연구를 개척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향후 노벨생리의학상과 경제학상도 AI 연구진에게 수상의 영광이 주어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AI 육성은 우리에게도 절박한 이슈다.

양질의 일자리, 2년 새 70% 급감
화제를 잠깐 돌려보자. 기업과 노동 분야의 최대 화두는 'Z세대'를 중심으로 입사 후 '무한 이직' 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중앙일보가 직장인 6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 재직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 50%가 여유 시간에, 12.2%가 일과 시간에 이직을 준비한다고 답변했다.
입사하자마자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AI 공약은 머나먼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누군가는 MZ세대의 무성의와 인내심 부족을 지적한다. 기성세대는 MZ세대의 이기적 행태를 언급하며 "요즘 애들은 계산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처럼 열의를 다해 근무하며 회사를 가족처럼 느끼고 공동체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기업의 인사 철학, 인재 육성 방침은 퇴색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월 노동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기업의 구인 인원을 구직 인원으로 나눈 구인배수는 0.32로 전월(0.40)보다 하락했다. '구인배수 0.32'란 일자리 1개에 평균적으로 구직자 3명이 지원한다는 얘기다. 언론에서는 3월을 기준으로 외환위기 여파가 있던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보도했다. 누군가는 낮아진 구인배수 수치를 보고 무한 이직하는 Z세대 탓이라고 비판하지만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무한 이직' 현상 뒤에는 소리 없이 사라지는 질 좋은 일자리 문제가 있다.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해석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300인 이상 사업체, 이른바 대기업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라고 얘기한다. 2022년 300인 이상 사업체는 18만2000개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2023년 해당 일자리는 9만 개로 줄어들었고, 지난해엔 5만8000개로 급감했다. 불확실성, 경력직 선호, AI 고도화 등이 일자리를 파괴했다.
AI가 일자리를 파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가 인간보다 확실히 뛰어나고 정확하다. 그 결과, 일하는 20대 중 무려 43.1%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20대는 단순 반복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AI에 대한 50조~200조원 투자도 중요하지만 급감하는 일자리, 비정규직 확산 속에서 청년층의 일자리, 더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각 정당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저성과자 등에는 AI가 오히려 위협 요소
2024년 세계적인 학술지 아카데미경영저널(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중국 연구진이 'AI가 임직원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회사에 근무하는 구성원들이 AI를 활용할 때 창의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진행한 실험 결과가 화제가 됐다. 고성과자와 숙련도 높은 인력의 창의성에는 AI가 많은 도움을 주지만 저(低)성과자와 숙련도가 낮은 구성원에게 AI는 오히려 위협 요소로 다가왔다.
숙련도가 높고 성과가 좋은 구성원들의 경우 AI가 단순 반복, 정형화된 업무를 지원해 주기에 훨씬 더 고난도 문제에 집중해 창의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숙련도와 성과가 떨어지는 구성원들은 단순 반복, 정형화된 영역에서조차 AI에 밀리면서 더 많은 공포를 느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AI에 대한 투자는 AI를 고도화시킨다. 그런데 이 점이 일자리를 빼앗는 역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얘기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도 올해 '생성형 AI가 팀워크와 전문성을 재구조화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논문에도 생각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생성형 AI가 도입되면 생산성 향상 등 무수히 많은 장점이 있지만 조직 구조 및 인력 운영도 효율화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두 연구는 AI의 활용을 통한 성과 창출과 함께 AI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중국은 이 점을 고려해 AI 정책의 핵심 중 하나를 인재 육성에 뒀다. 학제 융합과 AI 대학원 설립을 통해 지난해 500개가 넘는 대학에서 AI 전공 및 학위 과정을 도입했다.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높여야 창의성과 생산성을 창출할 수 있고 일자리 축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층의 일자리와 AI 고도화 정책이 충돌하지 않으려면 선제적 투자 이전에 선제적 인재 육성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일자리는 기업의 성장을 넘어 국가의 복지와 연결되고 마지막에는 개인의 생존으로 이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관세 폭탄의 정당화를 집요하게 자국민에게 가스라이팅 하는 이유다.
줄어드는 국내 일자리는 현재진행형에서 미래진행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일상이 된 시대,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세상에서 100조~200조원의 AI 투자는 청년층에게 뜬구름일 뿐이다. 미래 먹거리는 정말 중요하지만 당장 시급한 건 현재의 일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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