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니? 꿈에서라도 좀 보자”...미주알고주알 일상 공유한 장기기증자 유족들

방영덕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byd@mk.co.kr) 2025. 5. 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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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5월이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이들에게는 유독 시린 계절이다. 그나마 고인의 장기 기증을 선택한 유족들은 그의 일부라도 이 세상에서 잘살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사무치는 그리움을 견뎌낸다.

4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이달 3일 현재 기증원 홈페이지의 ‘추모공간’에는 유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게 쓴 편지 1만2000여건이 쌓여있다.

기증원은 장기 및 조직의 기증 활성화를 위해 그들의 숭고한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수정을 거쳐 편지 내용을 활용할 수 있게 공개했다.

가족들이 쓴 편지에는 온통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말이 담겼다. 평범한 이들이 언제든 마주 보고 할 수 있는 말이면서도, 선뜻 잘 쓰지 않는 말들이다.

2013년 1월 31일에 쓰인 첫 번째 편지는 ‘고맙다, 좋은 일을 하고 떠나서.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라는 제목의 글로 글쓴이는 ‘엄마’다.

그는 “어젯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섞여 네 발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잠이 깨 한참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네가 올 수 없음에 허망해하며 날밤을 새우고 하루 종일 무엇에 쫓기듯 허둥대다가 이 글을 쓴다”며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고맙다. 좋은 일을 하고 떠나서.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남겼다.

또 다른 엄마는 “따듯한 날씨, 싱그러운 나뭇잎들, 눈 부신 햇살이 엄마 가슴을 또 아프게 한다”며 “푸른 오월에 바라보는 하얀 꽃은 슬프게만 보이는구나”라고 슬퍼했다.

다른 편지를 쓴 이는 “열심히 바삐 살던 직장인들은 긴 연휴 시작이라고 계획들을 세우고 하는구나. 너도 그랬을 텐데, 긴 연휴 동안 바쁘게 다녔을 것”이라며 “바쁘니. 꿈에서라도 얼굴 좀 보자”라고 적었다.

한 딸은 아빠를 향해 “난 아빠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시고부터 5월이 싫어졌어”라며 “아빠한테 못 해 드린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아빠한테 너무나 죄송해서 5월 너무나 싫어”라고 후회했다.

유족들이 편지로나마 간절히 나누고 싶은 것은 특별한 게 아닌 소소한 일상.

한 딸은 아빠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써 “두릅을 따는데 아빠 생각 많이 났어. 아빠도 두릅 잘 찾잖아. 집에 와서는 엄마가 칼국수 해줬지롱”이라는 등 미주알고주알 하루를 전했다.

한 아들은 5월을 앞두고 “과수원에 복숭아꽃, 사과꽃들이 가득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밤에 물 마시러 나가면 덥다고 거실에서 주무시던 엄마 모습이 떠올라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엄마를 불러봐요”라며 “오늘 밤에는 제 꿈에 나와주세요. 그리고 저를 보듬어주세요. 엄마의 아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일 뿐이네요”라고 썼다.

이들의 가슴 아픈 이별 덕분에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수증자들은 감사함을 표하며 기증자 몫까지 더 건강하게 살 것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인체조직과 장기를 기증하기를 원하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등록할 수 있다.

보건소나 의료기관 등 장기 이식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 신청서를 써도 되고, 따로 작성한 신청서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우편으로 보내도 된다.

한 번 등록했다고 하더라도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취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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