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나라 조선, ‘오대산’에서 만나는 조선왕조실록

이채윤 2025. 5. 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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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전관 개관
7월 13일까지 오대산 사고 가는 길 특별전
수장고 부족 ‘오대산 사고본’ 전권은 아직 귀환 못해
▲ 평창 오대산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이채윤

오대산은 삼국시대부터 명당으로 꼽혔다. 사고가 지어질 당시에는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을 다시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교정본 실록’이 봉안됐다가, 정본 실록이 차례로 보관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은 일본으로 무단 반출돼 대부분 소실됐다가 110여년 만에 국내로 돌아오는 굴곡진 역사를 겪었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산문에 위치한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관장 김정임)이 최근 전관 개관했다. 실록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민관 협력으로 110여 년 만에 환수된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의 원본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지난 2023년 11월 상설전시실을 통해 실록과 의궤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다가 어린이를 위한 체험 공간과 가족 단위 휴게공간 조성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임시 휴관 후 10개월간 새단장을 마쳤다.

국가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왕실의궤는 1922년 왕실도서 1205책과 함께 일본 궁내성으로 반출됐으며 2011년 오대산 사고본을 포함해 국내로 환수됐다. 일본 왕실 관리의 주체인 궁내성이 조선왕조의궤를 요구한 것은 조선왕실을 일본의 귀족 ‘이왕공가’로 격하하고, ‘이왕공족실록’을 편찬하기 위해서였다.
 

▲ 신재근 학예연구사가 박물관 상시전시실에서 왕의 어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채윤

상실전시실에서 국내로 환수된 오대산 사고본을 만날 수 있는 가운데, 실록박물관은 기획전시실에서 전관 개관 기념 특별전 ‘오대산 사고 가는 길’을 7월 13일까지 연다. 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사고의 설립과 운영부터 쇠퇴의 역사를 한 눈에 조명할 수 있는 40여 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1606년 평창 오대산에 사고가 새롭게 설치되면서 실록을 비롯한 국가중요기록물이 오대산 사고에 보관됐다. 현재 서울에서 오대산을 가는 건 180km, 1시간 40여분이 걸리지만 조선시대 당시에는 약 170km(420리)을 가는데 약 5일이 소요됐다.
 

▲ 오대산사고가 표시된 조선시대 지도인 동여도. 빨간색점이 오대산사고다. 이채윤

오대산사고의 사각은 두개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서적을 보관하는 상고(2층)에는 실록과 함께 왕이 지은 글인 어제, 왕이 쓴 글씨인 ‘어필’을 비롯한 중요 왕실 서적이 보관됐다. 사각의 하고(1층)에는 247권 458책 의궤와 각종 유학 서적들이 자리했다. 오대산엔 외사고 중 강화사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의궤가 분상됐다.

오대산을 관리하는 주체가 강원도민들이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오대산을 수호 인력은 강원도에서 선발됐다. 건물관리 실무자인 참봉인 지역 유생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을 갖춘 2명이 뽑혔고, 월정사가 수호사찰로 주지가 총섭을 맡았다. 사고를 순철해 도난을 막는 수직승도는 강릉과 양양에서 승려 40명을 뽑아 20명이 교대근무를 섰다. 오대산을 순시하며 화재 예방을 하던 근무 인력인 수호군은 인근 백성으로 충원됐으며 4명에서 60명까지 인원이 늘었다.

한양에서 오대산사고 서적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사관을 파견했는데, 사고에서 책을 꺼내 그늘에서 바람에 말리는 포쇄를 시행했다. 포쇄를 위해 한양에서 오대산을 방문했던 이들은 관동 명승여행을 떠났다.

추사 김정희는 포쇄 이후 강릉 오죽헌에서 ‘심헌록’(尋軒錄)이라는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는데, 이 방명록이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조선후기 문신 사염순도 포쇄를 위해 평창을 찾았다가 동해 무릉계곡과 설악산 등을 방문했다. 동여도와 관동명승첩 등 조선시대 지도와 화첩도 전시돼, 오대산사고를 다녀간 이들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조선왕조실록어린이박물관 속 체험 공간. 이채윤
▲ 조선왕조실록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속 오대산 사고의 모습. 이채윤

어린이박물관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즐겁게 실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오대산사고의 구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광해군일기에 등장했던 ‘강원도 UFO 등장설’과 숙종이 아끼던 고양이 금손이 등 어린이들도 실록의 이야기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컨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김정임 박물관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2023년 개관 후 7개월간 4만5000명이 다녀가 실록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컸다”며 “개축을 통해 편의시설과 2층에 기획전시실과 영상실을 마련했고, 체험공간인 어린이박물관을 세웠다”고 밝혔다.

새로 증축된 어린이박물관과 다목적실에서는 지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초교 3~6학년 학급을 대상으로 실록을 수호하는 퀘스트 형식의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지난 2023년 일부 개관했지만 실록박물관은 문화·종교계, 국민들의 많은 도움을 통해 개관할수 있었다”며 “환수 과정과 박물관 전면 개관에서 실록박물관의 가치를 알려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실록박물관이 세계적으로 우뚝설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실록박물관에 실록 전체를 보관할 수 있는 수장고는 마련되지 않아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현재 박물관 내 수장고는 공간과 보안 여건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오대산 사고본도 아직 ‘고향 강원’엔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박물관 측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김정임 관장은 “실록 수장고를 개관한 상태지만 향후 별도로 전체 실록을 보관할 수 있는 보존연구동을 만들 계획으로 올해부터 예산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한편 박물관은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연휴기간에는 전관 개관을 맞아 각종 이벤트가 진행된다. 조선왕조실록을 소재로 만화를 그린 ‘무적핑크’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됐으며 ‘조선왕조실록’의 박시백 작가와의 대화도 4일 이어진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를 위한 솜사탕 증정 이벤트와 전통 퓨전 마술공연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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